[형사] 사기죄에서의 기망행위 인정 여부에 관한 사건

- 대법원 2021. 10. 14. 선고 201616343 판결

 

강동호 변호사

 

  1. 사안의 개요

     

    이 사안에서 피고인 1은 안전진단전문기관으로 등록된 공소외 1 회사(이하공소외 1 회사’)를 운영하는 자로, 피고인 1은 안전점검 또는 정밀안전진단(이하 통칭하여안전진단’) 용역을 낙찰받아 나머지 피고인들이 운영하는 독립채산 하도급 업체들(이하이 사건 독립채산업체’)에 도급금액의 약 60% 금액으로 하도급하기로 마음먹고, 입찰 이전부터 이 사건 독립채산업체 소속 기술자 직원을 미리 공소외 1 회사 소속으로 허위 등재하는 등으로 나머지 피고인들과 각각 공모하였습니다. 한편 안전진단전문기관으로 등록된 공소외 2 회사(이하공소외 2 회사라 하고, 공소외 1 회사와 공소외 2 회사를 합쳐이 사건 수급업체’)를 운영하는 공소외 3도 같은 방식으로 피고인 3, 피고인 4가 운영하는 독립채산 하도급 업체들에 하도급하기로 마음먹고, 피고인 3, 피고인 4와 각각 공모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피고인 1 및 공소외 3은 위와 같이 각각 공모하여 이 사건 수급업체 명의로 한국도로공사, 서울시 등이 발주하는 다수의 안전진단 용역 입찰에 참가하고 사업수행능력 평가 관련 서류를 제출하는 등으로 마치 이 사건 수급업체가 해당 용역을 수행할 것처럼 가장하여, 이에 속은 발주처 계약 담당 직원으로 하여금 위 사업수행능력 평가에 따른 입찰참가자격심사 및 적격심사를 하도록 하여 안전진단 용역을 낙찰받고도, 그 후 이 사건 독립채산업체에 하도급을 주어 용역을 수행하게 하고 이러한 하도급 사실을 모르는 발주처로부터 각 용역계약별로 용역대금을 교부받아 이를 각 편취하였습니다.

     

    나아가 피고인 1 및 공소외 3은 위와 같이 이 사건 독립채산업체에 안전진단 용역을 하도급하여 이 사건 수급업체 명의로 해당 용역을 수행하게 함으로써 각 용역계약별로 안전진단 업무에 관한 명의대여를 하였고, 나머지 피고인들은 각각 하도급받은 용역을 수행함으로써 각 용역계약별로 안전진단 업무에 관한 명의대여를 받았습니다.

     

  2. 원심의 판단

     

    원심은 (ⅰ) 이 사건 각 안전진단 용역을 수행한 주체는 이 사건 수급업체가 아니라 이 사건 독립채산업체라고 인정되고, 이 사건 수급업체가 안전진단 용역 수행에 실질적으로 관여하였다고 볼 수 없으므로, 명의대여로 인한 구 시설물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2017. 1. 17. 법률 제14545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으로 전부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구 시설물안전법’) 위반 부분을 유죄로 판단하고, (ⅱ) 구 시설물안전법이 적용되는 안전진단 용역에 관해서는, 이 사건 독립채산업체 소속 기술자를 이 사건 수급업체 소속 기술자로 허위 등재하고 이 사건 수급업체가 용역을 수행할 것처럼 입찰에 참가하거나, 용역 수행 과정에서 수행 주체가 이 사건 수급업체인 것처럼 가장하는 행위는 발주처에 대한 기망행위에 해당하는바, 용역대금 편취로 인한 특정경제범죄법 위반(사기) 및 사기 부분을 유죄로 판단하였습니다.

     

  3. 대법원의 판단

     

  1. 명의대여로 인한 시설물안전법 위반 부분에 관하여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원심이 명의대여로 인한 시설물안전법 위반 부분을 유죄로 판단한 데에는, 구 시설물안전법의 명의대여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원심을 파기 환송하였습니다.

     

  1. 구 시설물안전법 제9조의3이 금지하고 있는타인에게 자기의 명칭이나 상호를 사용하여 안전점검 또는 정밀안전진단업무를 영위하게 하는 행위’(이하명의대여라 한다)란 타인이 자신의 명칭이나 상호를 사용하여 자격을 갖춘 안전진단전문기관으로 행세하면서 안전진단 업무를 영위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와 같은 목적에 자신의 명칭이나 상호를 사용하도록 승낙 내지 양해한 경우를 의미한다고 해석하여야 하므로, 어떤 안전진단전문기관의 명의로 도급된 안전진단 용역의 전부 또는 대부분을 다른 사람(이하용역 수행자'라 한다)이 맡아서 수행하였더라도, 안전진단전문기관 자신이 안전진단 용역에 실질적으로 관여할 의사로 수급하였고 그 용역 수행 과정에 실질적으로 관여하여 왔다면 이를 명의대여로 볼 수는 없고, 여기서 안전진단전문기관이 안전진단 용역의 수행에 실질적으로 관여하였는지 여부는, 안전진단 용역의 수급·수행 경위와 대가의 약속 및 수수 여부, 대가의 내용 및 수수방법, 안전진단 용역 수행과 관련된 안전진단전문기관과 용역 수행자의 약정내용, 용역 수행 과정에 안전진단전문기관이 관여하였는지 여부, 관여하였다면 그 정도와 범위, 용역 수행 자금의 조달·관리 및 대금의 수령방법, 용역 수행에 따른 책임과 손익의 귀속 여하 등 드러난 사실관계에 비추어 객관적으로 판단하여야 하는 점(대법원 2003. 5. 13. 선고 20027425 판결 등 참조),

     

  2. (ⅰ) 이 사건 수급업체는 독자적으로 다수의 안전진단 용역계약 입찰에 참가하여 낙찰받은 후에 그중 일부 용역계약에 관하여 이 사건 독립채산업체와 하도급계약을 체결하여 용역을 수행하도록 하였고, 나머지 상당수 용역계약은 하도급 없이 스스로 수행한 점, (ⅱ) 이 사건 수급업체와 이 사건 독립채산업체 사이에 명의대여나 그 대가의 지급 등에 관한 논의나 협의가 진행된 바가 전혀 없는 점, (ⅲ) 이 사건 수급업체는 기본적으로 발주처와의 용약계약 체결 및 계약조건 변경, 용역계약상 수행 일정 및 기한에 따른 이행관리, 단계별 발주처 보고 및 협의, 보고서 최종 검토 및 완성 등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발주처에 대한 계약이행의 책임을 실질적으로 부담한 점, (ⅳ) 이 사건 수급업체가 용역 완성 성과물을 발주처에 제출하고 발주처로부터 직접 용역대금을 수령하였고, 용역대금의 수령에 관하여 이 사건 독립채산업체는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은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수급업체는 안전진단전문기관으로서 이 사건 각 안전진단 용역의 수행에 실질적으로 관여하였다고 봄이 타당한 점 등 때문입니다.

     

  1. 명의대여로 인한 시설물안전법 위반 부분에 관하여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원심이 용역대금 편취로 인한 특정경제범죄법 위반(사기) 및 사기 부분을 유죄로 판단한 데에는, 사기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원심을 파기 환송하였습니다.

     

  1. 사기죄는 보호법익인 재산권이 침해되었을 때 성립하는 범죄이므로, 사기죄의 기망행위라고 하려면 불법영득의 의사 내지 편취의 범의를 가지고 상대방을 기망한 것이어야 하고, 사기죄의 주관적 구성요건인 불법영득의 의사 내지 편취의 범의는 피고인이 자백하지 않는 이상 범행 전후 피고인의 재력, 환경, 범행의 내용, 거래의 이행과정 등과 같은 객관적인 사정 등을 종합하여 판단할 수밖에 없으며, 특히 도급계약에서 편취에 의한 사기죄의 성립 여부는 계약 당시를 기준으로 피고인에게 일을 완성할 의사나 능력이 없음에도 피해자에게 일을 완성할 것처럼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로부터 일의 대가 등을 편취할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에 의하여 판단하여야 하는바, 이때 법원으로서는 도급계약의 내용, 그 체결 경위 및 계약의 이행과정이나 그 결과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하는 점(대법원 2008. 2. 28. 선고 200710416 판결, 대법원 2008. 4. 24. 선고 20079802 판결 등 참조),

     

  2. 사기죄의 보호법익은 재산권이므로, 기망행위에 의하여 국가적 또는 공공적 법익이 침해되었다는 사정만으로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없는바, 도급계약 당시 관련 영업 또는 업무를 규제하는 행정법규나 입찰 참가자격, 계약절차 등에 관한 규정을 위반한 사정이 있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도급계약을 체결한 행위가 기망행위에 해당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되고, 그 위반으로 말미암아 계약 내용대로 이행되더라도 일의 완성이 불가능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만큼 그 위법이 일의 내용에 본질적인 것인지 여부를 심리ㆍ판단하여야 하는 점(대법원 2019. 12. 27. 선고 201510570 판결, 대법원 2020. 2. 6. 선고 20159130 판결 참조),

     

  3. 원심은 구 시설물안전법이 전문기술이 필요한 경우 등 일정 범위 내로 안전진단 용역의 하도급을 제한하는 규정(구 시설물안전법 제8조의3)을 두고 있기 때문에, 위 규정의 적용 여부를 기준으로 사기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한 것으로 보이나, 구 시설물안전법상 하도급 제한 규정은 시설물의 안전점검과 적정한 유지관리를 통하여 재해와 재난을 예방하고 시설물의 효용을 증진시킨다는 국가적 또는 공공적 법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이를 위반한 경우 구 시설물안전법에 따른 제재를 받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곧바로 사기죄의 보호법익인 재산권을 침해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고, 사기죄가 성립된다고 하려면 이러한 사정에 더하여 이 사건 각 안전진단 용역계약의 내용과 체결 경위, 계약의 이행과정이나 결과 등까지 종합하여 살펴볼 때 과연 피고인들이 안전진단 용역을 완성할 의사와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용역을 완성할 것처럼 거짓말을 하여 용역대금을 편취하려 하였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는 점,

     

  4. 그런데, 이 사건 각 안전진단 용역계약에 있어서 구 시설물안전법상 하도급 제한 규정을 준수할 의무가 이 사건 수급업체의 계약상 의무로 약정되었는지조차 분명하지 않고, 이 사건 각 안전진단 용역계약의 입찰공고, 용역계약서 등에는 대부분 하도급 제한에 관한 별다른 언급이 없으며, 설령 위 하도급 제한 규정 준수의무가 계약상 의무로 일부 포함되었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일의 완성을 목적으로 하는 도급계약인 안전진단 용역계약에 있어서 다른 특별한 약정이나 사정이 없는 한, 그 의무가 용역의 완성과는 별도로 반드시 이행되지 아니하면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거나 용역대금의 지급과 상호 대가적 관계에 있는 중요하고 본질적인 의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점,

     

  5. 이 사건 수급업체는 안전진단 용역 수행에 실질적으로 관여하여 이 사건 각 안전진단 용역계약에서 정한 과업을 모두 완성하였고, 발주처의 검수 및 한국시설안전공단의 심사 결과 안전진단 용역 결과가 적정하다는 평가를 받은 점 등 때문입니다.

     

  1. 이 판결의 의의

     

    이 판결은 구 시설물안전법의 보호법익은 국가적 또는 공공적 법익이므로, 이를 위반하였다고 하여 곧바로 사기죄의 보호법익인 재산권을 침해하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고, 사기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용역을 완성할 의사와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용역을 완성할 것처럼 거짓말을 하여 용역대금을 편취하려 하였는지 여부라는 사기죄의 별도의 요건을 갖춰야 함을 명확히 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