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신탁] 신탁계약의 종료 시점에 관한 신탁계약서 문언의 해석

- 대법원 2021. 12. 30. 선고 2021264420 판결

 

김윤기 변호사

 

1. 사실관계

 

건물(이하 이 사건 건물’)을 건설하여 분양하는 사업을 시행하는 시행자 A와 신탁회사 B2017. 3. 21. 분양형 토지신탁계약(이하 이 사건 신탁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이 사건 신탁계약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이 신탁의 목적은 토지 위에 이 사건 건물을 건축하고 이를 분양하는 데에 있다. 위탁자(A)는 이 사건 토지를 수탁자(B)에게 신탁한다(1).

 

신탁기간은 신탁계약 체결일부터 시작하여 이 사건 건물의 사용승인일부터 3개월이 되는 날까지로 한다. 다만,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 수탁자는 위탁자 및 수익자와 협의하여 이 기간을 조정할 수 있다(22).

신탁계약은 신탁기간이 만료한 경우에 종료한다(24조 제3).

 

신탁기간이 만료된 이후에도 수탁자의 반대 의사표시가 있지 않는 한, 실제의 신탁사무가 종료하기 전까지는 신탁계약은 종료하지 않고 유효하다(특약 제21조 제2, 이하 이 사건 조항’).

 

A, B 및 시공사는 2017. 4. 6.에 이 사건 건물 신축공사를 도급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도급계약서 제2조 제2항은 분양형 토지신탁의 종료와 동시에 수탁자(B)가 이 사건 도급계약에 따라 부담하는 모든 의무와 책임(공사비지급의무를 포함하되 이에 한정되지 않음)은 계약상 지위 변경약정 체결 등 별도의 행위 없이 포괄적면책적으로 위탁자(A)에게 이전한다.’고 정하고 있었습니다.

 

B2017. 10. 19. 이 사건 건물의 신축공사 중 전기공사 부분을 분리하여 C에게 도급하였고, 이러한 분리도급에 따라 B, C, 시공사는 같은 날 기존 도급계약을 변경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변경계약서 제3조는 이 사건 변경계약에서 달리 정하고 있지 않은 사항에 대하여는 이 사건 도급계약이 적용된다.’고 정하고 있었습니다.

 

C는 위 변경계약에 따른 전기공사를 완료하였고 이 사건 건물은 2019. 3. 22. 무렵 사용승인이 났으나, 일부 공사대금을 지급받지 못하자 B를 상대로 공사대금의 지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그러나 신탁회사인 B‘2020. 6. 4.A에게 더 이상 신탁관계를 유지할 의사가 없다고 통지함으로써 이 사건 신탁계약이 종료되었고, 이로써 이 사건 변경계약에 따른 B의 채무는 포괄적면책적으로 A에게 이전되었으므로 C의 청구에 응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2. 원심의 판단

 

원심은,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 이 사건 조항에서의 수탁자의 반대 의사표시는 신탁기간 만료일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행사되어야 하므로, 신탁기간이 만료된 시점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수탁자의 반대 의사표시가 있지 않으면 신탁계약은 종료하지 않고 유효하게 존속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21. 7. 23. 선고 20202033757 판결).

 

  1. 이 사건 조항에서 정하는 수탁자의 반대 의사표시는 신탁계약의 효력을 연장하거나 종료할 것인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을 전제하고 있는 점,

 

  1. 만약 신탁기간이 만료된 시점 이후 수탁자에게 언제라도 일방적인 의사표시에 의하여 신탁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라면 그와 같은 취지를 적극적으로 규정하는 방법을 택했을 것인 점,

 

  1. 신탁계약의 종료 여부나 그 시점을 수탁자가 일방적인 의사표시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신탁과 관련된 법률관계를 불안정하게 하고 공평의 원칙에 반하는 점입니다.

 

이어서 원심은, 이 사건 신탁기간이 만료된 2019. 6. 22.(= 사용승인일로부터 3개월이 되는 날)부터 약 11개월이 지난 시점에 이루어진 수탁자(B)의 통지를 두고 신탁기간이 만료된 시점으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행사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위 통지로써 이 사건 신탁계약이 종료되었다는 B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고, BC에게 이 사건 변경계약에 따른 공사대금채무를 부담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3. 대법원의 판단 (파기환송)

 

대법원은 아래와 같이 판시하며, 원심판결에는 계약해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고,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가 정당하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21. 12. 30. 선고 2021264420 판결).

 

  1. 계약당사자 사이에 어떠한 계약내용을 처분문서인 서면으로 작성한 경우에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가 명확하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문언대로 의사표시의 존재와 내용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에는 문언의 내용, 계약이 이루어지게 된 동기와 경위, 당사자가 계약으로 달성하려고 하는 목적과 진정한 의사, 거래의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 그리고 사회일반의 상식과 거래의 통념에 따라 계약내용을 합리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대법원 1996. 7. 30. 선고 9529130 판결 등 참조). 특히 당사자 일방이 주장하는 계약의 내용이 상대방에게 중대한 책임을 부과하게 되는 경우에는 그 문언의 내용을 더욱 엄격하게 해석하여야 한다(대법원 2016. 12. 15. 선고 2016238540 판결 참조). 계약서에 표현된 당사자의 의사가 명백한데도 합리적인 근거 없이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내용을 추가하는 것은 의사해석의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

 

  1. 이 사건 신탁계약서에 기재된 신탁기간이 만료된 이후에도 수탁자의 반대 의사표시가 있지 않는 한, 실제의 신탁사무가 종료하기 전까지는 신탁계약은 종료하지 않고 유효하다.’라는 문구는 그 자체로 신탁기간의 만료 후 실제의 신탁사무가 종료하기 전까지는 수탁자가 반대하는 의사표시를 하지 않는 경우에 한하여 신탁계약이 존속한다.’는 의미가 명확하고, 달리 수탁자가 반대하는 의사표시가 신탁기간 만료일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있어야 한다.’는 기재가 없다. 이 사건 신탁계약에 따른 신탁관계의 종료 시점을 판단하면서 계약서에 기재되지도 않은 내용을 추가하는 것은 처분문서인 이 사건 신탁계약서의 문언과 그로부터 알 수 있는 당사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한다.

 

  1. 신탁법 제98조 제6호는 신탁행위로 정한 종료사유가 발생한 경우 신탁은 종료한다.”고 정하고 있는데, 이 사건 신탁계약 제24조 제3호는 신탁기간이 만료한 경우를 신탁계약의 종료사유로 정하고 있고 제22조는 신탁기간 만료일을 이 사건 건물의 사용승인일부터 3개월이 되는 날로 정하고 있으므로, 이 사건 신탁계약은 기간 만료일인 2019. 6. 22. 종료하는 것이 원칙이다.

 

  1. 이 사건 조항은 신탁기간 만료일 이후에 수탁자(B)의 사정이 허용하는 한도에서 추가적으로 신탁계약에 따른 사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예외를 둔 것이다. 이를 두고 신탁 관계 전반에 법적 불안정을 가져온다거나 공평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처분문서에 기재되지도 않는 내용을 추가하여 신탁계약 기간만료 초기에만 반대 의사표시를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수탁자(B)에게 예견할 수 없는 부담을 지움으로써 법적 불안정을 가져오고 공평의 원칙에도 반할 여지가 있다.

 

  1. 신탁계약의 종료에 따라 의무이행자가 소송 도중에 변경되거나 변경된 의무이행자의 변제자력이 부족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원고(C)가 이 사건 변경계약의 당사자로서 신탁계약 종료시 포괄적면책적 계약인수를 받아들임으로써 부담하게 되는 위험이지 이 사건 조항으로 인하여 비로소 발생하는 문제로 볼 수 없다.

 

4. 판결의 의의

 

신탁계약서와 같은 처분문서를 해석할 때에는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를 최우선으로 하되, 문언의 내용이 명확하지 않을 경우에 한하여 계약이 이루어지게 된 동기와 경위, 당사자가 계약으로 달성하려고 하는 목적과 진정한 의사, 거래의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게 됩니다.

 

그리고, 신탁계약의 종료시점은 사업시행자의 지위를 신탁기간 동안 보유하게 되는 수탁자(신탁회사)의 지위와 연관된 것으로서, 신탁계약이 종료되기 전에는 본래 위탁자(시행자)를 상대로 하여야 할 각종 청구의 상대방이 수탁자(신탁회사)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문제된 이 사건 조항은 신탁기간이 만료된 이후에도 수탁자의 반대 의사표시가 있지 않는 한, 실제의 신탁사무가 종료하기 전까지는 신탁계약은 종료하지 않고 유효하다.’고 하여, 수탁자(신탁회사)의 반대 의사표시의 기한을 별도로 정해 두고 있지 아니하였음에도, 원심은 신탁기간이 만료된 날로부터 상당한 기한 내에 반대 의사표시를 하여야 한다고 해석하였고, 대법원은 그러한 원심의 해석에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본 것입니다.

 

비록 이 사건 조항이 신탁계약의 특약사항에 해당하여 신탁기간은 신탁계약 체결일부터 시작하여 이 사건 건물의 사용승인일부터 3개월이 되는 날까지로 한다.’거나 신탁계약은 신탁기간이 만료한 경우에 종료한다.’는 신탁계약의 일반사항에 비하여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것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하여 수탁자(신탁회사)에게 상당한 기한 내에 반대 의사표시를 하여야 하고, 그렇지 아니한 경우 신탁은 종료되지 아니하고 유효하게 존속한다고 해석하게 될 경우, 오히려 신탁계약의 종료시점이 언제인지 알 수 없게 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수탁자(신탁회사)가 신탁계약에서 계속하여 벗어날 수 없도록 강제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어 보입니다. 따라서, 이에 관한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의사해석에 관하여 적절한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신탁계약의 당사자(위탁자 및 수탁자)가 수탁자의 별도 반대 의사표시가 없는 한 신탁계약이 존속하도록 정하고자 할 경우, 그와 같은 취지를 계약서에 명시적으로 정하여야 할 것이고, 그에 따라 신탁계약이 유지될 경우의 종료시기 및 계약해소 방안에 대하여도 명시적으로 정해 둘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