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동종 경쟁업체에 취직 시 명예퇴직금 전액

반납하기로 한 각서의 효력

- 대법원 2021. 9. 9. 선고 2021234924 판결 약정금

 

박준상 변호사

 

1. 들어가며 - 경업금지약정

 

핵심인재가 동종업계로 이직한다면, 기술을 기반으로 한 기업에게는 곧 기술의 유출을 의미하고, 이는 회사의 명운과도 직결됩니다. 근로자가 회사를 퇴직하면서 일정 기간 동종 또는 경쟁업체에서 근무하지 않겠다고 약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반적으로 ‘전직금지약정’, ‘경업금지약정’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경업금지를 정한 모든 약정이 유효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회사의 존속과 영업비밀의 보호의 관점에서 필요한 측면이 있지만,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헌법이 보장한 직업의 자유 및 자유로운 경쟁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경우 민법 제103조에 따라 무효로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전직금지약정’을 유효로, 어떠한 경우를 무효로 보아야 할까요?

 

우리 대법원은 전직금지약정의 유효성을 판단함에 있어 대체로 신중한 태도를 보입니다. 대법원은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 근로자의 퇴직 전 지위, 경업 제한의 기간·지역 및 대상 직종, 근로자에 대한 대가의 제공 유무, 근로자의 퇴직 경위, 공공의 이익 및 기타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대법원 2010. 3. 11. 선고 200982244 판결)’는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경업금지약정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최근의 판례로, 명예퇴직을 하면서 ‘퇴직 후 3년 내 동종 경쟁업체에 취업한 경우 명예퇴직금을 반환하겠다’는 취지의 각서를 쓰고, 이후 3년 이내 동종 경쟁업체에 취업을 한 경우, 이를 경업금지약정으로 보아 명예퇴직금을 반환하여야 하는지가 문제된 사건이었습니다.

 

2. 기초사실

 

원고는 전력설비 및 관련 시설물에 대한 개ㆍ보수공사업 등을 영위하는 회사로, 명예퇴직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본인은 동종 경쟁업체에 취업이 예정된 상태에서 명예퇴직을 하지 않을 것이며, 퇴직 후 3년이 경과하기 전에 동종 경쟁업체에 취업한 경우에는 일반퇴직으로 전환되는 것을 인정하고 명예퇴직금 전액을 조건 없이 반환하겠습니다‘는 각서(이하 ’이 사건 각서‘)를 받아왔습니다.

 

한편, 피고 A, B는 원고 회사에서 각 30, 39년 근무하다가 이 사건 각서를 쓰고 명예퇴직한 후 명예퇴직금을 수령하였습니다. 그럼에도 피고들은 퇴직 후 3년 이내 동종업계의 다른 회사로 재취업하였고, 원고는 피고 A, B가 이 사건 각서 상의 경업금지약정을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명예퇴직금 전액을 반환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3.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이 사건 각서에 대해 ‘① 이 사건 각서에는 퇴직 후 일정 기간 다른 회사로의 전직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의무규정 이 포함되어 있지는 아니하므로, 위와 같은 문언만으로 곧바로 피고들에게 경업금지의무가 부과된다고 보기는 어렵고, 명예퇴직 후 3년 내 동종 경쟁업체에 취직하면 명예퇴직의 효력이 상실되어 지급받은 명예퇴직금을 반환해야 하는 ‘명예퇴직의 해제조건’에 관하여 약정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해석하였습니다. 이를 전제로, 이 사건 각서에 따른 명예퇴직 해제조건이 성취되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시하고 있습니다.

 

① 원고의 명예퇴직제도가 회사 내의 인사적체를 해소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한편 장기근속자들의 조기퇴직을 도모하기 위한 사례금 내지 공로금의 성격도 함께 가지고 있어, 원고가 지급한 명예퇴직금이 온전히 경쟁업체에 전직하지 않는 대가로 지급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고, ② 피고들의 재취업에 원고에서 근무하며 습득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가 도움이 되었더라도, 그것이 원고의 영업비밀이거나 또는 원고만 가지고 있는 지식 또는 정보에 이르지 아니고 그러한 기술 내지 정보는 이미 동종의 업계 전반에 어느 정도 알려져 있거나 수년간 동종업무를 담당하면서 통상 습득하게 되는 수준 정도로 보이며, ③ 명예퇴직자는 원고에서 장기근속한 자로서 원고에서 수행한 업무를 통하여 습득한 일반적인 지식과 경험을 이용하는 업무에 종사할 수 없다면 직장을 옮기는 것이 용이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 사건 각서에 따라 간접적으로 전직이 제한되는 기간이 3년으로 비교적 긴 점 등 이 사건 각서의 내용, 명예퇴직제도의 취지, 피고들이 취득한 기술이나 정보의 성격, 전직이 제한되는 기간 및 피고들의 근로권과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종합하면, 이사건 각서에서 정한 명예퇴직에 관한 해제조건은 단순한 경쟁업체에의 재취업만으로는 부족하고, ‘재취업 직장이 원고와 동종 경쟁관계에 있어 원고에서 알게 된 정보를 부당하게 영업에 이용함으로써 원고에 손해를 끼칠 염려가 있는 경우’로 엄격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4. 대상판결의 의의 및 시사점

 

근로자의 헌법상 보장되는 근로권 및 직업선택의 자유를 고려할 때, 퇴직하는 근로자에게 퇴직 후 일정 기간 다른 회사로의 전직이 금지되는 의무가 있다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의무를 명시적으로 부과하는 규정이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런데, 대상판결에서 설시하는 바와 같이, 이 사건 각서의 문언과 객관적 의미를 충실히 해석할 때, 위 문언만으로는 경업을 금지하는 명시적인 의무가 포함되어있다고 판단되지 않습니다

 

또한, 경업금지의무는 보호할만한 가치가 있는 기술 내지 정보로서 영업비밀의 침해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이므로, 피고들의 경우 명예퇴직 시 일괄적으로 이 사건 각서를 관행적으로 징구받았던 점, 피고인들은 과장 또는 기술자 직급이었던 자들로, 기밀사항을 다루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점에 기초할 때 동종 업계의 재취업으로 인해 원고에 손해를 끼칠 우려가 없거나 매우 적은 것은 명확해 보이는바, 이 사건 각서의 의미를 경업금지의무 위반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고 본 대상판결의 법리는 타당해 보입니다.

 

또한, 명예퇴직금은 일종의 사례금과 위로금의 성격이므로, 이를 전직하지 않는 대가로만 해석할 수는 없으며, 피고들은 30년 이상 원고 회사에 근무한 근로자들로 재취업의 용이성을 고려할 때 3년 동안의 경업금지기간은 과도한 측면이 있으므로, 대상판결은 구체적 타당성과 근로자의 형평을 적절히 구현한 것으로 사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