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2024. 6. 27. 선고 2024다216187 판결


작성자: 이승훈 변호사


1. 사안의 개요

원고는 성명불상의 보이스피싱 범죄자에게 속아 자신의 휴대폰에 원격제어 프로그램을 설치하였고, 위 성명불상자와 공모관계에 있는 공범자는 피고로부터 금목걸이를 매수하였는데, 위 성명불상자가 원고의 계좌에서 피고의 계좌로 직접 금목걸이 대금을 이체하였습니다. 원고는 피고가 수령한 금원이 부당이득이라고 주장하면서 피고를 상대로 그 반환을 청구하였습니다.

2. 이 사건의 쟁점 및 원심의 판단

이 사건에서는 채무자가 피해자(원고)로부터 편취한 금전을 자신의 채권자(피고)에 대한 채무변제에 사용한 경우, 채권자의 금전취득이 피해자에 대한 관계에서 법률상 원인이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는데, 원심은 원고와 피고 사이에 계좌이체의 원인이 되는 법률관계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피고의 금원 취득에는 법률상 원인이 없다고 보아, 피고는 원고에게 취득한 금원을 부당이득을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3. 부당이득 반환과 관련한 법리

대법원은 부당이득제도와 관련하여, ‘부당이득제도는 이득자의 재산상 이득이 법률상 원인을 결여하는 경우에 공평과 정의의 이념에 근거하여 이득자에게 그 반환의무를 부담시키는 것으로서, 특정한 당사자 사이에서 일정한 재산적 가치의 변동이 생긴 경우에 그것이 일반적·형식적으로는 정당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들 사이의 재산적 가치의 변동이 상대적·실질적인 관점에서 법의 다른 이상인 공평의 이념에 반하는 모순이 생기는 경우에 재산적 가치의 취득자에게 가치의 반환을 명함으로써 그와 같은 모순을 해결하려는 제도’라고 판시하였으며(대법원 2015. 6. 25. 선고 2014다5531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법률상 원인이 있는지 여부와 관련하여, ‘채무자가 피해자로부터 편취한 금전을 자신의 채권자에 대한 채무변제에 사용하는 경우 채권자가 그 변제를 수령하면서 그 금전이 편취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악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다면, 채권자의 금전취득은 피해자에 대한 관계에서 법률상 원인이 있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12. 1. 12. 선고 2011다74246 판결, 대법원 2023. 8. 31. 선고 2023다232557 판결 등 참조).

4.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위와 같은 법리를 설시하면서, 아래와 같은 사정 등에 비추어 볼 때, 피고가 금원을 취득한 것은 보이스피싱 피해자인 원고에 대한 관계에서도 법률상 원인이 있다고 보아, 이와 달리 판단한 원심을 파기, 환송하였습니다.

 
(Ⅰ) 보이스피싱 범죄자에 의하여 원고의 계좌에서 피고의 계좌로 이체됨으로써 원고가 편취당한 이 사건 금원은 순금 목걸이 거래대금채무의 변제에 사용된 것이므로, 피고가 위 금원을 받을 당시 그것이 편취된 금원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악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피고가 금원을 취득하는 것은 원고에 대한 관계에서도 법률상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원고가 직접 이체행위를 하지 않았더라도 원고가 자신의 휴대폰에 원격제어 프로그램을 설치하도록 원인을 제공하였으므로, 보이스피싱 범죄자가 원고로 하여금 피고의 계좌로 이체하게 한 것과 원고로부터 얻은 정보를 통하여 직접 원고 계좌에서 피고 계좌로 이체한 것을 구별하여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
 
{Ⅱ) 피고는 중고거래 인터넷 사이트에 100돈짜리 순금 목걸이를 2,900만원에 판매한다는 글을 게시한 이후 매수자로 가장한 소외인을 만나 이 사건 금원을 포함한 2,898만원을 받고 목걸이를 중고로 판매하였을 뿐이고, 이 사건 금원이 보이스피싱 범죄자가 원고로부터 편취한 금원이라는 사실을 피고가 알았거나 알지 못한 데에 중대한 과실이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5. 이 판결의 의의

부당이득 반환의무를 인정한 원심의 판단대로라면, 피고(채권자)는 보이스피싱 범죄자와 거래를 하였다는 사정만으로(혹은 상대방의 신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아니하는 등의 사소한 과실만으로), 물건판매로 받은 대가를 원고에게 돌려주어야 하고, 자신은 판매한 물건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어 사실상 자신이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결과가 발생하게 되는바, 이러한 결론은 상법의 영역에서 중요시 되는 ‘거래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측면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이 판결은, 원고와 피고 사이에 ‘직접적인’ 법률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사안에서 ‘법률상 원인’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공평과 정의의 이념에 근거하여 법률상 원인을 결여한 이득자에게 그 반환의무를 부담시키는 부당이득제도의 취지를 고려하였을 때, 채권자에게 금전이 편취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악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지 않은 한, 채권자에게 법률상 원인이 있다고 판단함으로써,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자와 악의 또는 중과실이 없는 보이스피싱 범죄자의 채권자 사이에서 거래의 안전을 통한 채권자 보호를 보다 우선시하였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