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채권양도인이 채권을 추심하여 임의사용시 횡령죄 성립 여부

- 대법원 2022. 6. 23. 선고 20173829 전원합의체 판결

 

김윤기 변호사

 

1. 종래 대법원의 입장

 

대법원은 채권양도인이 양도통지 전에 채무자로부터 채권을 추심하여 금전을 수령한 경우에 관하여, 아래와 같이 판시한 바 있습니다.

 

<대법원 1999. 4. 15. 선고 97666 전원합의체 판결>

 

채권양도는 채권을 하나의 재화로 다루어 이를 처분하는 계약으로서, 채권 자체가 그 동일성을 잃지 아니한 채 양도인으로부터 양수인에게로 바로 이전하고, 이 경우 양수인으로서는 채권자의 지위를 확보하여 채무자로부터 유효하게 채권의 변제를 받는 것이 그 목적인바, 우리 민법은 채무자와 제3자에 대한 대항요건으로서 채무자에 대한 양도의 통지 또는 채무자의 양도에 대한 승낙을 요구하고, 채무자에 대한 통지의 권능을 양도인에게만 부여하고 있으므로, 양도인은 채무자에게 채권양도 통지를 하거나 채무자로부터 채권양도 승낙을 받음으로써 양수인으로 하여금 채무자에 대한 대항요건을 갖출 수 있도록 해 줄 의무를 부담하며, 양도인이 채권양도 통지를 하기 전에 타에 채권을 이중으로 양도하여 채무자에게 그 양도통지를 하는 등 대항요건을 갖추어 줌으로써 양수인이 채무자에게 대항할 수 없게 되면 양수인은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되므로, 양도인이 이와 같은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양수인으로 하여금 원만하게 채권을 추심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의무도 당연히 포함되고, 양도인의 이와 같은 적극적·소극적 의무는 이미 양수인에게 귀속된 채권을 보전하기 위한 것이고, 그 채권의 보전 여부는 오로지 양도인의 의사에 매여 있는 것이므로, 채권양도의 당사자 사이에서는 양도인은 양수인을 위하여 양수채권 보전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할 수 있고, 따라서 채권양도의 당사자 사이에는 양도인의 사무처리를 통하여 양수인은 유효하게 채무자에게 채권을 추심할 수 있다는 신임관계가 전제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나아가 양도인이 채권양도 통지를 하기 전에 채무자로부터 채권을 추심하여 금전을 수령한 경우, 아직 대항요건을 갖추지 아니한 이상 채무자가 양도인에 대하여 한 변제는 유효하고, 그 결과 양수인에게 귀속되었던 채권은 소멸하지만, 이는 이미 채권을 양도하여 그 채권에 관한 한 아무런 권한도 가지지 아니하는 양도인이 양수인에게 귀속된 채권에 대한 변제로서 수령한 것이므로, 채권양도의 당연한 귀결로서 그 금전을 자신에게 귀속시키기 위하여 수령할 수는 없는 것이고, 오로지 양수인에게 전달해 주기 위하여서만 수령할 수 있을 뿐이어서, 양도인이 수령한 금전은 양도인과 양수인 사이에서 양수인의 소유에 속하고, 여기에다가 위와 같이 양도인이 양수인을 위하여 채권보전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양도인은 이를 양수인을 위하여 보관하는 관계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금전채권의 양도인이 채권을 추심하여 채무자로부터 금전을 수령한 경우, 해당 금전은 양수인의 소유이고, 양도인은 이를 양수인을 위하여 보관하는 관계에 있으므로, 양도인이 이를 임의로 소비한 경우 양수인에 대하여 횡령죄의 죄책을 부담한다는 것입니다.

 

2. 변경된 대법원의 판례

 

그러나 최근 대법원은,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 금전채권의 양도인이 양수인에게 채권양도의 대항요건을 갖추어 주지 않은 채 채무자로부터 채권을 추심하여 금전을 수령하고 이를 임의로 처분한 경우,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아, 기존의 견해를 변경하였습니다(대법원 2022. 6. 23. 선고 20173829 전원합의체 판결).

 

. 횡령죄의 구성요건으로서 재물의 타인성

 

채권양도에 의하여 양도된 채권이 동일성을 잃지 않고 채권양도인으로부터 채권양수인에게 이전되더라도, 채권양도인이 양도한 채권을 추심하여 금전을 수령한 경우 금전의 소유권 귀속은 채권의 이전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채권 자체와 채권의 목적물이니 금전은 엄연히 구별되므로, 채권양도에 따라 채권이 이전되었다는 사정만으로 채권의 목적물인 금전의 소유권까지 당연히 채권양수인에게 귀속한다고 볼 수 없다.

 

채권양도인이 채권양도 후에 스스로 양도한 채권을 추심하여 수령한 금전에 대해서는 채권양도인과 채권양수인 사이에 어떠한 위탁관계가 설정된 적이 없다. 채권양수인은 채권양도계약에 따라 채권양도인으로부터 채권을 이전받을 뿐이고, 별도의 약정이나 그 밖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 한 채권양도인에게 채권의 추심이나 수령을 위임하거나 채권의 목적물인 금전을 위탁한 것이 아니다.

 

채무자가 채권양도인에게 금전을 지급한 것은 자신의 채권자인 채권양도인에게 금전의 소유권을 이전함으로써 유효한 변제를 하여 채권을 소멸시킬 의사에 따른 것이고, 채권양도인 역시 자신이 금전의 소유권을 취득할 의사로 수령한 것이 분명하다. 채권양수인의 의사는 자신이 채권을 온전히 이전받아 행사할 수 있도록 대항요건을 갖추어 달라는 것이지, 채권양도인으로 하여금 대신 채권을 추심하거나 금전을 수령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채권양도인이 채권양도 통지를 하기 전에 채무자로부터 채권을 추심하여 금전을 수령한 경우 금전의 소유권은 채권양도인에게 귀속할 뿐이고 채권양수인에게 귀속한다고 볼 수 없다.

 

. 채권양도인의 채권양수인을 위한 보관자 지위

 

채권양도인과 채권양수인의 양도에 관한 의사 합치에 따라 채권이 양수인에게 이전되고, 채권양도인은 채권양도계약 또는 채권양도의 원인이 된 계약에 기초하여 채권양수인이 목적물인 채권에 관하여 완전한 권리나 이익을 누릴 수 있도록 할 의무를 부담한다. , 채권양도인은 채무자에게 채권양도 통지를 하거나 채무자로부터 승낙을 받음으로써 채권양수인이 채무자에 대한 대항요건을 갖추도록 할 계약상 채무를 진다.

 

이와 같이 채권양도인이 채권양수인으로 하여금 채권에 관한 완전한 권리를 취득하게 해 주지 않은 채 이를 다시 제3자에게 처분하거나 직접 추심하여 채무자로부터 유효한 변제를 수령함으로써 채권 자체를 소멸시키는 행위는 권리이전계약에 따른 자신의 채무를 불이행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채권양도인이 채권양수인에게 채권양도와 관련하여 부담하는 의무는 일반적인 권리이전계약에 따른 급부의무에 지나지 않으므로, 채권양도인이 채권양수인을 위하여 어떠한 재산상 사무를 대행하거나 맡아 처리한다고 볼 수 없다. 채권양도인과 채권양수인은 통상의 계약에 따른 이익대립관계에 있을 뿐 횡령죄의 보관자 지위를 인정할 수 있는 신임관계에 있다고 할 수 없다.

 

. 판례의 방향성

 

최근 10여 년 동안 판례의 흐름을 보면, 대법원은 타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것이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아닌 통상의 계약관계에서 배임죄나 횡령죄의 성립을 부정해 왔다.

 

이와 같은 대법원 판결의 흐름은 배임죄에 관하여 죄형법정주의를 엄격하게 적용하겠다는 태도를 강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채무의 이행이 타인의 이익을 위한다는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행위를 형사법상 배신적 행위로 확대해석하여 배임죄나 횡령죄의 성립을 폭넓게 인정하는 것은 위와 같은 흐름에 배치될 수 있다. 설령 통상의 계약관계에서 양도인 등이 채무불이행 상태를 스스로 야기하고도 이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취득하는 행위에 비난가능성이 인정된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사정만으로 유사한 사안에 대하여 일관성이 없이 평가모순 상황을 초래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금전채권 양도에 관하여 배임죄가 문제되는 경우와 횡령죄가 문제되는 경우를 달리 취급하여 횡령죄의 경우에만 성립을 인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부당하다. 채권양도인이 채권양도 통지를 하기 전에 양도 채권 자체를 제3자에 처분환가하여 배임죄로 기소된 경우에는 무죄라고 하면서도, 양도 채권을 직접 추심하여 수령한 금전을 사용함으로써 횡령죄로 기소된 경우에는 유죄라고 할 정당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위 두 경우 모두 권리이전계약을 불이행한 행위의 본질이 서로 같고, 이로 말미암아 채권양도인이 얻는 경제적 이익과 채권양수인에게 발생하는 채권 상실의 결과가 같다. 그런데도 형사처벌에 관해서 두 경우를 달리 취급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론이다.

 

3. 판결의 의의

 

대법원이 설시한 것과 같이, 최근 대법원은 재산범죄인 배임죄와 횡령죄의 성립에 관하여, 죄형법정주의의 적용을 강화하고 있는 추세에 있습니다. 이번 판결에 따라 채권양도인의 채무자로부터 금전 수령 및 사용이 횡령죄를 구성하지 않게 된 것 역시, 그와 같은 경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나아가, 횡령죄의 성립요건인 보관자 지위와 관련하여서도, ‘위탁신임관계가 인정되어야 할 것인데, 자신의 채무를 불이행한 경우에는 위탁신임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최근 판례의 경향 역시 이번 판결에 반영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대법원은 부동산 이중매매의 경우에는 여전히 배임죄의 성립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부동산은 국민의 경제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이중매매를 방지할 충분한 법적 수단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사정이 고려된 것입니다.

 

향후 재산관계에서의 배신행위와 관련하여 배임죄나 횡령죄의 성립여부에 관하여 대법원이 어떠한 입장을 취할 것인지 계속하여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