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임금피크제 사건에서의 쟁점과 동향
이상도 변호사
1. 들어가며
대법원은 작년 5월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의 임금피크제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고령자고용법’) 제4조의4 제1항 제2호 소정의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차별로서 무효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고[1], 이로부터 약 1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1년 동안 위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기 전에 제기되었던 임금피크제의 유효성을 다투는 하급심 판결들이 선고되기도 하였고, 또한 새로운 사건이 제기되기도 하였는바, 이하에서는 임금피크제의 유효성을 다투는 사건에서 쟁점이 되는 사항들과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 경향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임금피크제 성격의 구분
임금피크제는 크게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와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이 도입하였던 임금피크제의 적법·유효성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후 고용노동부는 2022. 6. 3. 「임금피크제의 연령차별 여부 판단에 관한 FAQ」를 발표하면서, 위 두 가지 유형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였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위 FAQ에서 ‘임금피크제 도입 시점을 기준으로 노사가 정년 연장에 수반된 조치로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경우에는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이고, 정년의 변경 없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경우에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에 해당한다’고 하였습니다. 즉, 임금피크제가 도입된 시기를 기준으로 볼 때 정년 연장에 수반하여 임금피크제가 도입되었다면 이는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임금피크제가 정년 연장과 동시에 도입되지 않고, 정년이 연장된 후에 도입되었다고 하더라도,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근본적인 이유나 배경이 정년 연장에 있는 경우, 그러한 임금피크제는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특히, 2013. 5. 22. 법률 제11791호로 개정된 고령자고용법은 만 60세의 정년을 법제화하면서(제19조),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에 관한 규정도 함께 도입하였는바(제19조의2), 위와 같은 법률 개정 이후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였다면, 이는 고령자고용법 제19조의2에 따라 정년 연장에 수반하는 임금체계 개편의 일환으로 도입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 해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같은 임금피크제 성격의 구분이 임금피크제의 유효성을 다투는 사건에서 쟁점으로 되는 이유는 위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이 도입하였던 임금피크제는 만 60세의 정년이 법제화되기 전인 2009년 경에 도입되었던 것으로서 이른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에 해당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즉, 대법원이 위 한국전자기술연구원 사건에서 판시한 임금피크제의 유효성 판단 기준이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 관하여도 적용될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의 명시적인 판단은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보이나, 하급심들은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의 유효성을 판단함에 있어 한국전자기술연구원 사건에서 대법원이 판시하였던 기준을 참고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KT 사건(서울중앙지방법원 2022. 6. 16. 선고 2019가합592028 판결[2])과 삼성화재 사건(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1. 19. 선고 2020가합604507 판결[3])에서 하급심은 위 대법원 판결이 설시한 기준에 따라 KT와 삼성화재가 도입한 임금피크제(모두 정년연장형)를 적법한 것으로 판단하였습니다.
한편, 한국농어촌공사 사건에서 항소심(대전고등법원(청주) 2022. 12. 7. 선고 2022나50254 판결)은 위 대법원 판결이 판시한 기준은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에 관한 것으로서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의 유효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취지로 설시한 후, 위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한국농어촌공사가 도입하였던 임금피크제(정년연장형)는 적법하다고 판시하였으며, 대법원은 근로자들의 상고를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함으로써 위와 같은 항소심의 판단을 그대로 확정하였습니다(대법원 2023. 3. 30. 선고 2022다310634 판결).
3. 임금피크제의 도입이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는지 여부
임금피크제의 유효성을 다투는 사건에서 쟁점이 되는 것 중 하나가 임금피크제의 도입이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에 해당하는지 여부입니다.
이에 대하여 한국전력거래소 사건(서울남부지방법원 2022. 5. 27. 선고 2020가합103192 판결[4])에서 하급심은, ‘이 사건 임금피크제(정년연장형)가 시행되더라도 피고의 직원들은 기존의 정년 구간까지는 종전의 임금을 그대로 지급받고, 정년이 연장된 구간의 경우 직전 임금의 60%를 지급받게 되었는데 고령자고용법의 개정으로 사업주는 정년 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었고, 피고는 그 과정에서 정년이 연장된 구간에 대한 새로운 임금제도를 신설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는바, 이 사건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인하여 원고들이 어떠한 불이익을 입게 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여 정년 연장에 수반되어 도입된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의 경우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특히, 대법원은 ‘취업규칙의 변경이 근로자에게 불이익한지 여부를 판단할 때 근로조건을 결정짓는 여러 요소 중 한 요소가 불이익하게 변경되더라도 그와 대가관계나 연계성이 있는 다른 요소가 유리하게 변경되는 경우라면 그와 같은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대법원 2022. 3. 11. 선고 2018다255488 판결 등 다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바, 임금이 감액되는 것은 근로조건의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나, 그 반대급부로서 정년이 연장되어 더 오랜 기간 동안 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되었고, 정년 연장 전에 비하여 총액 측면에서 더 많은 임금을 지급받을 수도 있다는 점을 함께 고려할 때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가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이와 달리 임금피크제의 도입이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는 경우,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해서는 근로기준법 제94조에 따라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동조합의,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의 경우, 고령자고용법 제19조의2에 따라 도입되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므로, 노동조합의 동의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 없이 임금피크제가 도입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임금피크제의 유효성을 다투는 사건들 중에는 노동조합과 합의하여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였다고 하더라도(즉, 적법한 취업규칙 변경 절차를 거쳤음에도) 개별적 근로계약의 내용이 취업규칙에 우선한다는 대법원 판결의 법리에 따라 임금피크제 적용에 동의하지 않은 근로자들에 대하여는 임금피크제를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즉, 대법원은 지난 2019. 11. 14. ‘근로기준법 제94조에서 정한 집단적 동의를 받아 근로자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취업규칙이 변경된 경우, 변경된 취업규칙의 기준에 따라 그보다 유리한 근로조건을 정한 기존의 개별 근로계약의 내용이 변경된다고 볼 수는 없고, 근로자의 개별적 동의가 없는 한 취업규칙보다 유리한 근로계약의 내용이 우선하여 적용되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는바(대법원 2019. 11. 14. 선고 2018다200709 판결), 이와 같은 법리에 근거하여 근로자가 임금피크제 적용에 관하여 동의하지 않은 경우, 해당 근로자에 대하여는 임금피크제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 판결이 있은 후인 2022. 1. 13. 대법원은 ‘위와 같은 법리는 근로자와 사용자가 취업규칙에서 정한 기준을 상회하는 근로조건을 개별 근로계약에서 따로 정한 경우에 한하여 적용된다’고 판시하여(대법원 2022. 1. 13. 선고 2020다232136 판결), 위 법리의 적용 범위를 제한하였는바, 근로계약서 등에 ‘임금피크제 적용을 배제한다’는 등의 명시적인 문구가 존재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임금피크제 적용에 관하여 개별적 근로자들로부터 동의를 받은 사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임금피크제를 적법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4. 업무 저감·경감 조치가 필수적인 것인지 여부
임금피크제의 유효성을 다투는 사건에 공통적으로
쟁점이 되는 것이 임금 감소에 따른 업무 저감·경감 조치를 취하였는지 여부입니다. 이는 이른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근거한 주장인 것으로 이해됩니다. 즉, 임금이
감소된 만큼 업무의 난이도나 양, 근로시간 등도 함께 감소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국민건강보험공단 사건[5]에서 서울고등법원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공공복리에 필요한 경우 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그 본질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제한될 수 있는데,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도입하였던 임금피크제(정년연장형)는 고령 근로자의 고용 유지 및 안정을 위한 정년 연장에 있어서 필요한 조치로서, 고령자고용법 제4조의5 제4호 및 제19조의2 제1항 등 관련 법령에서도 이를 예정하고 있는 점, 그 도입 경위에 있어서도 근로자에게 유리한 '60세 정년 법정 의무화'와 함께 이루어져 이 사건 임금피크제만을 두고 원고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치였다고 평가할 수는 없는 점 등에 비춰볼 때 업무 저감·경감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나아가, 위 사건에서 서울고등법원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이라 함은 근로자의 학력 · 경력 · 근속연수 등 근로자 개인의 개별적인 요소들뿐만 아니라 근로 제공의 시점과 상황 등 모든 요소를 고려하여 그 가치가 같다고 인정되는 노동에 대하여는 같은 임금을 지급하여야 한다는 것이지(즉 같은 시기에 같은 근로환경에서 같은 내용의 근로를 제공하는 서로 다른 근로자나 근로집단 사이에서 임금의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이다), 근로 제공의 시기나 주변 여건의 변화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제공되는 근로의 내용이나 제공하는 근로자가 동일하다면 기존의 임금이 계속 보장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닌데, 임금피크제 시행 전에 제공된 원고들의 근로와 시행 후에 제공되는 원고들의 근로는 그 근로 제공의 시기가 다를 뿐만 아니라, '60세 정년 법정 의무화'라는 근로환경이 서로 다른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적용되어야 할 비교대상에 해당하지 않으며, 원고들의 주장대로라면 근로 내용의 차이가 전혀 없음에도 매년 임금이 인상되는 것이나 회사의 경영 실적에 따라 임금이 변동되는 것도 모두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위반이라는 것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사건 외에도 KT 사건, 삼성화재 사건, 한국농어촌공사 사건 등 다수의 사건에서 법원은 ‘정년연장에 연계하여 임금피크제가 실시되는 경우 정년연장 자체가 임금 삭감에 대응하는 가장 중요한 보상인 점, 임금피크제 적용대상 근로자들에게 반드시 별도 직군을 부여하거나 업무강도를 경감하여 줄 법적 의무가 발생한다고 볼 수 없는 점’ 등을 근거로 업무 저감·경감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임금피크제를 고령자고용법 제4조의4 제1항 제2호 소정의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차별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5. 나가며
각 사업체마다 도입한 임금피크제의 내용이 상이하여 그 적법·유효성을 일률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현재까지 선고된 임금피크제의 적법·유효성을 다투는 사건의 판결들을 살펴보면,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그 적법·유효성이 다수 인정된 것으로 보입니다.
[1] 대법원 2022. 5. 26. 선고 2017다292343 판결
[2] 1심은 임금피크제를 유효한 것으로 판단하였고, 항소심(서울고등법원 2023. 1. 18. 선고 2022나2025057 판결) 역시 1심과 동일하게 판단하였으며, 현재 상고심 계속 중입니다(대법원 2023다211550).
[3] 그대로 확정되었습니다.
[4] 그대로 확정되었습니다.
[5] 서울고등법원 2021. 12. 14. 선고 2019나2029394 판결이고, 근로자들이 상고하였으나 대법원 2022. 5. 12. 선고 2022다206841 심리불속행기각 판결로 확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