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한 해고처분 판단 :
“사표 쓰고 가라”가 해고의 의사표시인지
정경심 공인노무사
1. 머리말
2007. 1. 26. 근로기준법에 해고의 서면통지 규정이 신설되면서 그동안 해고의 의사표시와 관련해 쟁점이 됐던 문제는 일단락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사용자가 해고를 하려면 해고의 사유와 시기를 서면으로 통보해야 하고, 그와 같은 통지를 하지 않은 해고는 무효라고 했기 때문에, 사용자가 해고를 할 때는 꼭 서면으로 통보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규정이 시행된 이후에도 해고 사유나 절차가 부당한지의 문제가 아니라 과연 해고가 있었는지를 둘러싼 사용자와 근로자 간 다툼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해고라고는 하지 않지만, "사표 쓰고 가라", "내일부터 나오지 마", "같이 일 못 하겠다"는 말이 과연 해고의 의사표시인지, 갈등 상황에서 화가 나서 한 말인지에 대한 해석이 분분합니다. 오히려, 서면으로 하지 않은 해고통지는 효력이 없는데 왜 모호하게 해고의사표시를 했겠느냐는 사용자의 항변과, 한편으로는 해고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서면통지는 하지 않고 근로자가 스스로 근로계약을 해지하게 만드는 전략이라는 근로자의 주장이 맞섭니다.
최근 대법원은 "서면통지 여부는 해고의 효력 여부를 판단하는 요건일 뿐 해고 의사표시의 존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습니다(대법원 2023. 2. 2. 선고 2022두57695 판결). 해고의 서면통지가 해고의 의사표시 여부를 가려주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이 밖에 이 판결은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한 해고가 있었는지의 판단기준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2. 사건의 개요
원고는 2020. 1. 9. 전세버스 회사(피고보조참가인, 이하 '참가인')에 운전기사로 입사해 통근버스를 운행했는데, 같은 해 1. 30. 오후 3시와 2. 11. 오후 3시 30분 두 차례에 걸쳐 무단결행을 했습니다. 회사 관리팀장은 2. 11. 오전 10시경 원고에게 버스 키를 반납하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원고는 "왜요?"라고 묻고 키는 반납하지 않았습니다. 관리팀장은 같은 날 오후 5시경 관리상무를 대동하고 원고를 찾아가 버스 키를 직접 회수하고 질책하며 "사표를 쓰라"는 말을 수차례 했으며 "해고하는 것이냐"라는 원고의 물음에 "응"이라고 답했는데, 원고는 다음 날부터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원고가 5. 1. 부당해고구제신청을 하자 참가인은 원고에게 해고한 사실이 없다면서 '무단결근에 따른 정상근무 독촉 통보'를 했습니다. 이후 원고는 부당해고라고 주장하고, 참가인은 해고하지 않았다는 공방을 했습니다. 원고의 구제신청은 해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각됐고, 같은 이유로 피고인 중앙노동위원회에 대한 재심신청, 행정 1, 2심 모두 기각됐습니다.
원심은 "관리팀장이 원고에게 '사표를 쓰라'고 한 것은 원고가 무단결행 후 자신에게 무례한 언행을 한 것에 대해 화를 내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한 표현이고, 이는 사직서의 제출을 종용하는 것일 뿐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키겠다는 것이 아니며, 이 발언에 대해 원고가 사직서를 제출하는 등 분명한 사직의사표시를 한 적도 없으므로, 참가인의 관리팀장의 발언만으로 근로계약관계가 종료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원고에 대해 서면통지를 하지 않은 채 원고에게 복직을 촉구하기도 한 점에 비춰 참가인이 원고를 해고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대전고법 2022. 9. 16. 선고 2022누10205 판결).
3. 대법원 판결의 요지 및 해설
가. 서면통지와 해고 의사표시 존부와의 관계
근로기준법 제27조 해고의 서면통지 규정 신설의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해고 존부를 둘러싼 분쟁을 막기 위한 것도 있었습니다. 대법원 판결도 "근로기준법 제27조는 사용자가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효력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해고사유 등의 서면통지를 통해 사용자로 하여금 근로자를 해고하는 데 신중을 기하게 함과 아울러, 해고의 존부 및 시기와 그 사유를 명확하게 하여 사후에 이를 둘러싼 분쟁이 적정하고 용이하게 해결될 수 있도록 하고, 근로자에게도 해고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취지"라고 합니다(대법원 2011. 10. 27. 선고 2011다42324 판결, 대법원 2015. 11. 27. 선고 2015두48136 판결 등).
그러나 이 사건 대법원은 "서면통지 여부는 해고의 효력을 판단하는 요건일 뿐 해고 의사표시의 존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습니다. 해고 서면통지 규정이 해고 존부에 대한 다툼을 예방하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해고 서면통지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해고가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해고 존부의 문제와 해고 서면통지 규정의 관계를 명확하게 정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한 해고처분의 판단기준
대법원은 이 사건 원고가 해고됐다고 주장하는 경과를 살펴보면서 참가인이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한 해고를 한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먼저, 대법원은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한 해고가 있는지 여부는 사용자의 노무 수령 거부 경위와 방법, 노무 수령 거부에 대해 근로자가 보인 태도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사용자가 근로관계를 일방적으로 종료할 확정적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법리를 제시했습니다. 이와 같은 법리에 따라 이 사건의 묵시적 해고 여부에 대해 내린 법원의 판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관리팀장이 원고가 키를 반납하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관리상무를 대동해 버스 키를 직접 회수한 것은 원고의 노무를 수령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고, 사표 쓰고 나가라는 말을 반복한 것은 근로관계를 종료시키고자 하는 의사표시로, 단순히 우발적 표현에 불과하다고 볼 수 없다.
임직원이 7명에 불과한 참가인 회사에서 원고의 노무 수령을 확정적으로 거부하는 경우 인력 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것임에도 키를 회수하고 사표 쓰라는 말을 한 것은 참가인 회사 차원의 결단으로 볼 수 있고,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한 이후에야 갑자기 무단결근에 따른 정상근무 독촉 통보를 한 것을 고려하면 해고에 대한 대표이사의 묵시적 승인이나 추인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원고는 해고를 당했기 때문에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고 다음 날부터 출근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사표를 쓰라"는 표현이 사직서 제출을 종용한 것에 불과할 뿐 해고의 의미가 아니라거나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았으므로 근로관계가 존속한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관리팀장이 버스 키를 반납하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경위, 같은 날 버스 키를 회수하고 원고에게 "사표를 쓰라"는 발언을 하는 과정에 관리상무가 관여한 정도, 대표이사가 관리팀장에 의해 주도된 노무수령 거부행위를 묵시적으로나마 승인 혹은 추인했다고 볼 수 있는지 등을 심리한 후 해고가 존재하는지 여부를 판단했어야 하는바, 원심의 판단에는 해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서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
대법원은 2020. 2. 10. 오후 원고에게 "사표를 쓰라"고 하기 전 오전에 이미 버스 키 회수를 요구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오후에 만나서 버스 키를 회수한 점에 대해 참가인이 근로수령을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고, 원심은 이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이와 같은 경과를 종합해 관리팀장의 사표 발언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해고의 의사표시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다. 묵시적 해고 의사표시에 관한 판례
아래 몇 가지 판례를 참고하면 근로관계 해지의 의사표시가 어떻게 평가되는지 실질적인 기준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나가라", "사표 써라"는 식의 발언 외에도 노무수령을 거부하는 등의 근로관계 단절의사를 확인하는 추가적인 단서가 있는 경우 해고처분을 인정하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1) 묵시적 해고로 인정한 판결
피고가 원고들을 향해 함께 일을 못 하겠으니 나가라는 취지로 말하며 원고들의 작업을 중단시킨 행위는 사용자가 근로자에 대한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키겠다는 뜻을 일방적으로 통지한 해고의 의사표시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울산지법 2018. 7. 5. 선고 2017가합23499 판결).
2) 묵시적 해고를 부정한 판결
"힘들어하는 것 같으니 좀 더 수월한 자리를 알아봐라, 월급 때까지 아니면 사람을 구할 때까지만 나와라"는 발언 내용이 근로관계를 종료하고자 하는 의사였던 것은 인정된다 하더라도 원고의 의사에 반하는 경우에까지 일방적으로 강행하겠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고 일정 기간의 유예를 두고 근로관계의 종료의 의사를 타진했던 것은 근로관계 종료의 확정적인 의사표시로 보기 어렵다(서울행정법원 2009. 9. 3. 선고 2009구합23495 판결, 항소했으나 기각돼 확정).
원고는 2008. 3. 16. 참가인이 원고를 해고했다는 것이나, 앞서 인정한 사실에서 본 바와 같이 2008. 3. 12.경부터 원고와 참가인 사이에 자유직업소득자 계약 체결과 관련해 의견불일치가 있어왔고, 같은 달 15일경에는 원고의 고모까지 가세해 참가인과 사이에 심한 언쟁이 있었던 점에 비춰 보면, 그와 같이 참가인이 원고 등과 서로 언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원고 주장과 같이 '당장 그만두고 나가'라고 소리쳤다 할지라도 그것이 참가인이 원고에게 한 확정적인 해고의 의사표시로 보기 어렵다(서울행법 2009. 7. 16. 선고 2008구합50049 판결).
4. 맺으며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은 두 가지 의의를 갖습니다. 하나는, 해고서면통지 규정과 해고처분 유무와의 관계를 명확히 밝히고, 또 하나는 묵시적 해고의사 존부의 판단기준을 제시한 데 있습니다. 다만, 이 판결에도 불구하고 실무적으로는 묵시적 해고 여부에 대한 시비는 계속될 것인바, 노사 모두 해고 또는 사직의 의사표시로 오해받을 행위를 삼가고, 상대방의 근로관계 해지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