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무너지는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신뢰와 비용

 

김광중 변호사

 

과거에는 생산에 기여하는 물적 자본이나 금융 자본이 중요하였으나, 이제는 그에 못지 않게 인적 자본, 지식자본, 자연 자본, 문화 자본,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사회적 자본은사회구성원의 공동문제 해결을 위한 참여조건 또는 특성이나공동이익을 위한 상호 조정 과정과 협력을 촉진하는 사회적 조직의 특성으로 정의된다.

 

신뢰는 규범, 네트워크와 함께 사회적 자본의 핵심요소로 인정되고 있다.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신뢰는 대인신뢰와 기관신뢰로 구분되고, 대인신뢰는 다시 일반적 신뢰와 특정대상에 대한 신뢰로 구분된다. 사회적 자본으로서 중요한 것은일반적 신뢰기관신뢰. 일반적 신뢰란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속이거나 피해를 입히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신뢰는 사회적 교류와 협력을 촉진해 사회적 자본이 된다. 기관신뢰 역시 중요한 사회적 자본이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높으면 세금을 내려는 의향도 높아지고, 기업에 대한 신뢰는 기업의 경영활동에 기여한다.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신뢰는 거래의 효율성을 증진시켜 경제성장에 기여한다. 계약의 이행을 감독하고, 보호하는 비용과 재산권을 보호하는 데 드는 비용 등 거래비용은 경제성장의 장애요소이다. 신뢰는 이러한 거래비용을 줄임으로써 경제성장에 기여한다. 신뢰가 있는 경우 대리인 비용(대리인에게 일을 맡기는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이해충돌에 의한 비용)도 감소한다. 신뢰가 없는 경우, 타인이 기회주의적 행동을 한다고 믿어 일을 성실히 하지 않게 하는 유인이 발생한다.

 

OECD2017년 신뢰와 여러 지표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2002~2014년 유럽국가들에서의 일반적 신뢰도와 1인당 GDP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일반적 신뢰수준이 높을수록 1인당 GDP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6~2015 OECD 국가에서의 정부신뢰도 및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와 GDP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도 각각 0.54 0.64의 상관관계가 관찰되었다. 일반적 신뢰도의 수준이 높을수록 실업률은 낮았다. 정부신뢰도와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경우도 실업률은 낮았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 수준이 높으면 살인율도 더 낮아지는 경향이 확인되었다.

 

국내 조사에서는 사회적 자본인 신뢰가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신뢰는 사회갈등을 완화시켜주며 사회의 안정성을 유지해주는 주요 자원이 된다. 환경, 범죄, 교통, 주거, 건강, 노동 등에서 발생하는 사회비용을 감소시키는 데 역할을 함으로써 지속가능사회 발전에 기여한다.

 

신뢰는 불확실성이 존재하여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필요하다. 신뢰는 미래의 행위에 대한 확신에 찬 기대이다. 상대방이 미래에 긍정적 행위를 할 것이라는 강한 기대가 있는 경우에 위험성을 받아들일 수 있다. OECD는 신뢰를다른 사람이나 기관이 긍정적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기대와 일치하여 행동할 것이라는 개인의 믿음으로 정의하고 있다. 신뢰는 그 대상이 기대에 부응하여 행동하고, 바람직한 행동을 할 때에 형성된다.

 

사회적 자본으로서 신뢰의 효용과 그것이 사라졌을 때의 비용은 우리의 택배산업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우리는 택배가 도착했다는 알림을 받더라도 바로 집에 가지 않는다. 집 앞의 택배가 도난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회적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러한 신뢰가 없다면 많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택배 도난을 방지 하기 위해 일찍 퇴근을 하거나, 모임에서 일찍 헤어져야 한다. 아니면 도난 방지 설비를 설치하거나, 누군가를 집에 보내야 한다. 사회적 신뢰가 있기에 그 많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을 수 있다. 신뢰가 무너지면 지금의 택배산업이나 온라인 유통산업은 유지되기 어렵다. 이는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다른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사회 여기저기에서 신뢰가 무너지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이어 지난해 이태원 참사를 거치며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줄 것이라는 신뢰가 무너졌다. 조선시대 대기근이나 전쟁 등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백성들이 스스로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유래된 말이라는 한자성어 각자도생(各自圖生)’이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신림동과 서현역의 칼부림 사건으로 공중 장소는 그나마 안전할 것이라는 신뢰도 사라졌다. 관악산 살인사건까지 보면 각자도생하기에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잼버리 사태는 공적 조직의 능력과 책임의식에 대한 신뢰를,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논란은 SOC 사업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할 것이라는 신뢰를 무너뜨렸다. 채 상병 사망 사건과 그 책임자 조사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는 군에 대한 신뢰를 무너지게 한다. 방송통신위원장 교체 과정에서 벌어진 일련의 상황도 그렇다.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우리 정부가 우리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있을 것이라는 신뢰를 허물어지게 한다.

 

우리 사회가 오랜 기간 쌓아온 사회적 자본인 신뢰가 어느 순간 맥 없이 무너지고 있다. 그 만큼 우리가 앞으로 지출해야 하는 비용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