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윤남근 변호사

태국과 캄보디아 사이의 영토분쟁은 역사가 깊습니다. 캄보디아는 1863년 프랑스의 보호국이 되고, 1887년부터 1953년까지 라오스와 베트남 대부분을 포괄하는 French Indochina의 영토로서 프랑스의 식민통치를 받았습니다. 한편 1939년까지 태국의 공식 명칭은 Siam 왕국이었는데, 태국은 제국주의 시대에도 외세의 지배를 받지 않았습니다. Siam 왕국은 1904년과 1907년 프랑스와 Franco-Siamese 조약을 체결하고 French Indochina와 사이의 국경선을 확정하였습니다. 여기서 태국은 영토의 상당 부분을 French Indochina에 할양하고, 태국과 프랑스 관료들로 구성된 합동위원회가 측량을 감독하되, 프랑스 전문가들의 측량 결과를 바탕으로 국경지도를 제작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문제는 조약의 문구와 프랑스 전문가들이 제작한 지도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점입니다. 즉, 1904년 조약에서는 분쟁지역의 국경을 Pnom Dang Rek 산맥의 분수령을 연결한 선으로 한다고 규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지도에는 국경선이 위 분수령보다 태국 쪽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당연히 태국은 조약의 문언에 따른 국경선을 주장하고, 캄보디아는 지도에 표시된 국경선을 주장하다 보니 상당히 넓은 지역에 걸쳐 영토주권이 충돌하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분쟁지역에 위치한 앙코르 불교사원들을 중심으로 물리적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태국은 제2차대전에서 일본과 동맹관계를 맺고 분쟁지역에 있는 Preah Vihear 사원을 점령했다가 일본이 패전하자 이 지역에서 철수하였습니다. 그리고 1953년 캄보디아가 프랑스 식민지배에서 독립한 직후 이곳에 다시 군대를 주둔시켰습니다. 이에 캄보디아는 1959년 Preah Vihear 사원에 대한 영토주권을 주장하여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였는데, 재판소는 1962년 9:3의 다수의견으로 위 사원의 경내가 캄보디아 영토에 속한다고 판정했습니다. 태국의 전신인 Siam 왕국은 1907년 합동위원회의 검수를 마친 국경지도를 인수하였고, 이에 대하여 장기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유엔 산하 최고의 사법기관(司法機關)인 국제사법재판소가 분쟁사건에 관하여 관할권을 가지려면, 당사자 모두 국가일 것, 당사국이 그 판정에 따르겠다고 승낙하거나 과거에 승낙하였을 것을 요건으로 합니다. 이 경우 국제사법재판소의 결정은 당사국 사이에 구속력이 있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가 태국과 캄보디아 사이의 영토분쟁 사건에 관하여 판단한 것을 보면 관할권에 관하여 양국의 동의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캄보디아는 2008년 Preah Vihear 사원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태국 정부도 이에 동조하였으나 국민들 사이에 민족주의 감정이 고조되어 정부가 궁지에 몰리는 정치위기로 비화되었습니다. 급기야 태국 정부는 입장을 바꾸었고, 양국 사이에 2011년까지 이 지역에서 무력충돌이 발생하여 민간인을 포함한 20여 명이 사망하였습니다. 캄보디아는 국제사법재판소에 1962년 결정을 명확히 해 달라는 신청을 하였는데, 재판소는 2012년 양국 군대가 사원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하고, 2013년 사원과 인접 토지가 캄보디아에 속한다고 결정하였습니다.

2025년 2월에는 캄보디아 관광객들이 분쟁지역에 있는 Ta Muen Thom 사원 경내에서 캄보디아 국가를 부르자 태국군이 이를 제지한 사건으로 인하여 양국의 민족감정이 격화되었습니다. 2025년 5월 28일 분쟁지역 국경에서 양국 군대 사이에 총격전이 있었고, 여기서 캄보디아 군인 1명이 사망했습니다. 분쟁의 확대를 막으려는 양국 정부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7월 24일부터 분쟁지역 12곳에서 동시다발적인 무력충돌이 벌어져 양국에서 30여 명이 사망하고 3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생겼습니다. 양국은 아세안 의장국인 말레이시아와 미국의 중재로 7월 28일 전격적인 휴전 합의에 이르렀으나 교전이 잠정적으로 중단된 것뿐입니다.

태국과 캄보디아는 영해에 관하여도 분쟁을 벌이는 관계로 석유, 가스 등 엄청난 지하자원이 매장된 대륙붕 개발에도 제동이 걸려 있습니다. 물론 양국은 국경분쟁이 경제적으로 엄청난 손해라는 점을 공감하고, 1997년 공동국경위원회를 설치하였으며, 2000년에는 양해각서에 서명하였으나 분쟁 해결에 관하여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양국 국민이 서로 문화적, 역사적으로 민족적 경쟁의식과 적대감이 강한 터에, 여기서 득을 보는 정치세력이 있다 보니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