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2024. 11. 14. 선고 2022다281378 판결

작성자 : 김윤기 변호사

1. 사실관계

(1) A 회사는 경영관리 컨설팅 등의 업무를 영위하는 회사이고, B 조합은 조합원의 농업생산성 증진과 조합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법인(00농업협동조합)으로, 그 분사무소로 ‘경제사업소’(이하 ‘이 사건 경제사업소’)를 두어 조합원이 생산한 농산물의 위탁∙판매 등을 하는 로컬푸드매장 운영 및 농기계수리 관련 업무 등을 담당하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2) C는 1988. 2.경 B 조합에 은행 직원으로 입사하여 2020. 1. 6.부터 이 사건 경제사업소장(이 사건 경제사업소의 지배인)으로 재직하였습니다. 

(3) C는 2020. 4. 28.경 D 회사가 A로부터 40억 원을 대출받을 수 있도록 ‘D 회사는 부동산을 개발하는 사업의 대출금액 90억 원을 당 점포에서 취급하는바, D 회사가 A 회사에게 2020. 7. 29.까지 대여금 40억 원을 상환하지 않을 때 B 조합이 40억 원을 즉시 대위변제 지불할 것을 각서한다.’는 내용의 대위변제 지불각서(이하 ‘이 사건 지급보증서’)의 그 하단 지급보증확약인(각서인) 란 중 ‘조합장’ 글씨 옆에 이 사건 경제사업소의 사용인감을 날인하였고, B 조합의 인감이 날인된 이 사건 경제사업소의 사용인감계와 B 조합의 인감증명서를 첨부하여 A 회사에 교부하였습니다.

(4) A 회사는 2020. 4. 29. 이 사건 지급보증서를 수령하고 D 회사에 40억 원을 대여하였으나(이하 ‘이 사건 대출’) D 회사로부터 변제받지 못하자 2020. 6. 23. B 조합을 상대로 지급보증금 등의 지급을 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5) 한편, C는 2022. 7. 15. ‘B 조합 조합장 명의의 이 사건 지급보증서를 위조하고, E에게 교부하여 이를 행사하였으며, 그 대가로 2020. 5. 4. 1억 원, 2020. 5. 6. 1억 원의 합계 2억 원을 교부받아 금융회사 등의 임직원으로서 그 직무에 관하여 금품을 수수하였다.’는 범죄사실로 징역 8년 및 벌금 2억 원을 선고받아 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2. 원심의 판단

이 사건의 피고가 된 B 조합은, A 회사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C의 행위가 그 직무권한 내에서 적법하게 행하여진 것이 아니라는 사정을 알 수 있었는데도 만연히 이를 직무권한 내의 행위라고 믿음으로써 일반인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에 현저히 위반하는 중대한 과실이 있으므로 B 조합의 사용자책임이 면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에 대하여 원심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A 회사의 중과실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B 조합의 면책 주장을 배척하였습니다(수원고등법원 2022. 9. 7. 선고 2021나21872 판결).

(i) A 회사는 C로부터 이 사건 지급보증서를 교부받으면서 B 조합의 법인인감이 날인된 사용인감계 및 법인인감증명서를 함께 전달받았는바, 사용인감계 및 법인인감증명서의 기능 및 역할에 비추어 볼 때 A 회사, 나아가 일반인으로서는 C가 B 조합의 분사무소인 이 사건 경제사업소의 지배인으로서 적법하게 이 사건 지급보증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ii) A 회사가 이 사건 지급보증서 교부행위 이전에 B 조합과 같은 농업협동조합 내지 경제사업소와 거래한 경험이 있는 등 이 사건 경제사업소의 역할에 관하여 사전에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볼 아무런 자료가 없다. A 회사는 C를 이 사건 경제사업소장(지점장)과 B 조합의 금융사업본부장을 겸직하는 자로 인식하였던 것으로 보이므로, A 회사가 인식한 C의 직무권한을 이 사건 경제사업소의 업무 범위로 한정시킬 것도 아니다. 

(iii) A 회사는 이 사건 지급보증서 작성 전후로 C로부터 소개받은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로부터 이 사건 지급보증서에 첨부된 사용인감계에 B 조합의 법인인감이 날인되어 있고 법인인감증명서까지 첨부되어 있으므로 B 조합을 상대로 이 사건 지급보증서에 기한 청구를 하는 데 특별한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조언을 들었다.

3. 대법원의 판단

그러나 대법원은, ‘피용자의 불법행위가 외형상 객관적으로 사용자의 업무와 관련된 것으로 보여지는 경우에 사용자로 하여금 그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하는 이른바 외형이론은 그 외형에 대한 사회적 신뢰의 보호와 형평의 관념에서 우러나온 것이므로, 그것이 사무집행행위에 해당하지 않음을 피해자 자신이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알지 못한 경우에는 공평의 관점에서 상대방을 구태여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봄이 상당하고, 이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그 행위가 법령상의 제한을 위반한 것인지에 대한 상대방의 인식가능성, 상대방의 경험이나 지위, 쌍방의 종래의 거래관계, 당해 행위의 성질과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대법원 2007. 9. 6. 선고 2005다20422 판결 참조).’는 기존 법리를 원용하면서, 아래와 같은 사정을 들어, 원심판결 중 B 조합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고등법원에 환송하였습니다(대법원 2024. 11. 14. 선고 2022다281378 판결).

(i) B 조합은 농업협동조합법에 따라 설립된 지역농업협동조합으로서 농업협동조합법 제57조 제2항에 따르면, 지역농협은 사업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국가, 공공단체, 중앙회, 농협경제지주회사 및 그 자회사, 농협은행 또는 농협생명보험으로부터만 자금을 차입할 수 있고 다른 기관이나 개인으로부터는 차입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위 규정의 취지는 외부자본의 부당한 침투를 막고 궁극적으로 농업인의 자주적인 협동조직인 농업협동조합의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므로, 농업협동조합이 다른 사람의 채무에 대하여 지급보증을 하는 행위는 차입에 준하는 채무부담행위로서 강행법규에 위반되어 무효이다. 위와 같은 법률 규정에도 불구하고 농업협동조합으로 하여금 무효인 지급보증행위에 대한 사용자책임을 부담하여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면, 강행법규가 금지하는 내용을 실현하는 것과 동일한 결과가 초래될 여지가 있다. 

(ii) A 회사는 2010. 3. 9. 경영관리(자금운영, 재무, 재정 관리) 컨설팅, 기업의 국내 및 해외 투자 유치 컨설팅업, 부동산 매매, 임대 및 기타 관리서비스업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주식회사로 이 사건 대출 당시 10년 이상 운영되고 있었고, 그 기간 동안 몇 개월을 제외하고는 동일인이 계속 대표이사로 재직하였다. 이 사건 지급보증서는 법률에 따라 차입이 금지된 B 조합이 D 회사의 A 회사에 대한 대출금채무를 지급보증하는 것이다. A 회사가 D 회사에 거액의 돈을 대여할지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 이 사건 지급보증서가 갖는 의미 내지 비중이 매우 컸을 것으로 보이는 점 및 A 회사의 위와 같은 금융업 등 운영 경력과 전문성 등을 고려하면, A 회사는 스스로 B 조합의 채무부담에 관한 법률상 제한이나 B 조합 임직원의 업무 범위 등에 관하여 비교적 어렵지 않게 이를 검토하여 확인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iii) A 회사는 이 사건 지급보증서를 교부받을 무렵 이 사건 경제사업소장인 C가 이 사건 지급보증서를 작성할 권한이 있는지, 이 사건 지급보증서에 따른 지급보증이 유효한지, B 조합의 이사회 결의가 필요하지 않은지 등에 관하여 의문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A 회사로서는 C의 B 조합 내에서의 지위나 권한, B 조합의 지급보증이 가능한지 여부나 그 절차 등을 알아보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 그 의문사항을 보다 분명하게 확인하였어야 했다. A 회사가 이러한 확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나 어렵다고 볼 사정은 없다. 그런데 A 회사가 자신의 의문과 관련하여 B 조합에게 관련 사실관계 등을 문의하였음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 오히려 A 회사는 이 사건 대출을 실행한 뒤 일주일이 지난 후에야 B 조합에게 이 사건 지급보증에 관하여 확인하였다. 이 점에서도 A 회사가 이 사건 지급보증서를 교부받기 전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C의 행위가 그 직무권한 내에서 적법하게 행하여진 것이 아니고 B 조합의 지급보증이 무효라는 사정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4. 판결의 의의

대법원은 종래부터 사용자책임에 관한 ‘외형이론’을 취하여, 피용자의 불법행위가 사무집행행위에 해당하지 않음을 피해자가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알지 못한 경우에는 공평의 관점에서 사용자의 책임을 부정하는 입장을 취해 왔으나, 실무상 상대방(피해자)의 중과실이 인정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실제 적용 사례가 매우 드물었습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피해자의 중과실을 인정하여 사용자의 책임을 부정하였다는 점에서 그 결론만으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할 것이나, 여전히 중요한 것은 그 판단기준이라 할 것입니다.

즉, 종래 대법원은 피해자의 중과실 인정 여부에 있어 (i) 피용자의 사무집행행위가 법령상 제한을 위반한 것인지에 대한 상대방(피해자)의 인식가능성, (ii) 상대방(피해자)의 경험이나 지위, (iii) 쌍방의 종래 거래관계, (iv) 당해 행위의 성질과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는 입장에 있는데(대법원 2007. 9. 6. 선고 2005다20422 판결), 본건의 경우 (i) A 회사는 이 사건 지급보증서가 갖는 의미 내지 비중에 대하여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하고, (ii) A 회사는 10년 이상 금융업 등 운영 경력과 전문성이 있었으며, (iii) A 회사로서는 B 조합의 지급보증이 가능한지 여부나 절차 등을 좀 더 확인하였어야 한다는 점이 충분히 고려된 것입니다.

나아가, B 조합과 같은 농업협동조합의 지급보증행위는 강행규정 위반으로 무효인데, 그에 대한 B 조합의 사용자책임을 인정할 경우 강행규정이 금지하는 내용을 손해배상을 통해 실현하는 것과 동일한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대법원의 판시 부분 역시, 반드시 참고하여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