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행 구성원 : 김광중 변호사
1. 들어가며
이 사건은 법무법인(유한) 한결이 피고들을 대리해 상고심을 수행하여, 파기환송(승소) 판결을 받은 사건입니다(대법원 2023. 4. 13. 선고 중요 판결 게시[1], 2023. 4. 23.자 법률신문 게재[2]).
초상권에 관한 권리의식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사진이나 영상 촬영도 어디서나 간편하게 이루어집니다. 자연스럽게 초상권 침해가 문제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얼굴이 노출되지 않을 권리의 반대편에는, 사실 전달을 위해 그 얼굴을 공개해야 할 필요성, 표현의 자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언론보도에서는 보도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고 그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보도 대상이 되는 사람의 얼굴을 공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백 마디의 문장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강력한 메시지를 주기도 합니다.
언론소송에서는 초상권 침해보다 명예훼손 사건이 비교적 많은 비율을 차지합니다. 판례도 명예훼손 사건에서는 명예훼손 피해자의 보호와 언론사의 표현의 자유 간에 균형을 찾기 위해 법리를 축적해 왔습니다. 그에 비해 초상권 침해 사건에 있어서는 위법성조각의 법리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이 사건 1, 2심 법원은 기존 판례의 초상권 침해에 관한 법리를 인용하고, 방송사의 기자들인 피고들이 원고의 얼굴이 보이는 영상을 공개한 것은 초상권 침해에 해당하며 위법성도 인정된다고 보았습니다. 본 법무법인은 상고심에서 원고가 공적 인물에 해당하고 피고들의 보도가 공적 관심사에 해당하므로, 이 사건에서 공적 관심사에 대한 표현의 자유가 원고의 초상권보다 우선해야 하고, 따라서 원심은 위법성 조각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였다는 취지로 주장하였습니다. 결국 대법원은 피고들의 보도가 위법성이 조각되어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하여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특히 이 대법원 판결은 기존 판례에 비해 언론보도로 인한 초상권 침해가 문제된 사건에서의 위법성조각 법리를 구체적으로 설시하여, 언론사의 초상 보도에 있어 적법한 보도에 관한 예측가능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2. 사실관계
원고는 어린이 다문화합창단인 레인보우합창단(이하 ‘이 사건 합창단’)을 운영하는 사단법인 한국다문화센터(이하 ‘이 사건 센터’)의 대표로 있었습니다. 이 사건 합창단은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의 애국가 제창행사에 초대받고 소속 단원의 학부모들에게 참가비 300,000원의 지급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자 일부 학부모들은 이에 항의하는 한편 참가비 전액을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지급하기로 하였다는 점 등을 들며 관련 서류의 열람 등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원고를 비롯한 이 사건 센터의 직원들은 이를 거부하였고 그 과정에서 한 학부모는 휴대폰을 이용해 위 상황을 약 4분 48초간 동영상(이하 '이 사건 동영상')으로 촬영하였습니다.
피고들은 이와 관련한 기사를 작성하여 MBC 뉴스데스크에서 방송하도록 하였는데 위 방송 중 약 32초간 이 사건 동영상 일부를 편집하여 사용하면서 원고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나게 하였습니다(이하 위 약 32초간의 방송 부분을 '이 사건 방송'이라 합니다).
원고는 이 사건 영상을 촬영한 학부모에 대해서는 불법적으로 영상을 촬영하여 피고들에게 넘기는 불법행위를 하였다고 주장하고, MBC의 기자들인 피고들은 원고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지 않은 채 이 사건 방송을 하는 불법행위를 하였다고 하면서 초상권 침해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습니다.
3. 소송경과
1심은 위 학부모의 촬영행위와 그 영상을 넘긴 행위는 위법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피고들의 행위는 초상권을 침해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하였습니다. 1심은 원고가 공적 인물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설령 공적 인물에 해당하더라도 얼굴까지 널리 알려져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으며, 원고의 초상권을 침해하지 않고도 공익적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는 방송을 할 수 있었고, 원고의 얼굴을 공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공공의 이익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하였습니다.
2심도 위 학부모의 촬영행위는 위법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피고들의 보도에 대해 2심은, 1심과 달리 원고가 공인의 지위에 있다고 볼 여지가 높다고 하면서도, 공인의 경우 언론에서 그 영상을 공개하는 것이 넓게 허용되지만 이 경우에도 이익형량의 법리가 적용된다고 하면서, 원고의 의사에 반해 촬영되었음이 명백하고 학부모에게 고압적으로 대하는 모습이 담겨 있어 사람들이 원고에게 부정적 인식을 가지게 될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이 사건 동영상을 원고의 얼굴을 식별할 수 없게 하는 조치 없이 그대로 방송할 필요성, 보충성, 긴급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원고가 입는 피해의 정도, 피해이익의 보호가치가 공익보다 크거나 우선하므로 위법성도 조각되지 않는다고 하여 피고들의 행위가 위법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4. 대법원 판결의 주요 내용
가. 초상권 침해와 위법성조각 법리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초상권 침해에 있어 위법성 조각사유에 관한 법리를 설시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얼굴 그 밖에 사회통념상 특정인임을 식별할 수 있는 신체적 특징에 관해 함부로 촬영되거나 그림으로 묘사되지 않고 공표되지 않으며 영리적으로 이용되지 않을 권리를 갖는다. 이러한 초상권은 헌법 제10조 제1문에 따라 헌법적으로도 보장되고 있는 권리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에 대한 부당한 침해는 불법행위를 구성한다. 그러나 초상권 침해가 문제되더라도, 그 내용이 공공의 이해와 관련되어 공중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며 표현내용 · 방법 등이 부당한 것이 아닌 경우에는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 초상권 침해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두 방향의 이익이 충돌하는 경우에는 구체적 사안에서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이익형량을 통하여 침해행위의 최종적인 위법성이 가려진다. 이러한 이익형량과정에서 첫째, 침해행위의 영역에 속하는 고려요소로는 침해행위로 달성하려는 이익의 내용과 중대성, 침해행위의 필요성과 효과성, 침해방법의 상당성 등이 있고, 둘째, 피해이익의 영역에 속하는 고려요소로는 피해법익의 내용과 중대성, 침해행위로 피해자가 입는 피해의 정도 등이 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특히 언론에 의한 초상권 침해가 문제되는 사건에서 이익형량에 중요하게 고려하여야 하는 요소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습니다.
“특히 언론보도로 인한 초상권 침해가 문제되는 사건에서 그 피해자가 공적 인물인지 일반 사인인지, 공적 인물 중에서도 공직자나 정치인 등과 같이 광범위하게 국민의 관심과 감시의 대상이 되는 인물인지, 단지 특정 시기에 한정된 범위에서 관심을 끌게 된 데 지나지 않는 인물인지, 그 보도된 내용이 피해자의 공적 활동 분야와 관련된 것이거나 공공성 · 사회성이 있어 공적 관심사에 해당하고 공론의 필요성이 있는지, 그리고 공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된 데에 피해자 스스로 관여한 바 있는지 등은 위와 같은 이익형량에 중요한 고려요소가 될 수 있다.”
나. 이 사안의 경우
대법원은 이 사건 방송으로 원고의 초상권이 침해되었다고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이유로 위법성이 조각되어 피고들의 행위가 불법행위가 되지 않는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하였습니다.
원고가 다문화전문가, 정치인 지지모임의 회장으로 활동하며 다수의 언론매체에 이름과 얼굴을 알려온 것을 보면 공적 인물로 볼 수 있고, 이 경우 원고의 공적 활동에 대한 의문∙의혹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문제제기가 허용되어야 한다.
합창단의 참가비 전액을 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부담함에도, 이 사건 센터가 학부모들에게 참가비를 부담하게 하였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이 사건 방송 전날에는 관련 보도도 방송되었다. 그 보도에서 원고는 스스로 얼굴을 공개하며 반론 인터뷰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이 사건 방송 내용은 공공성 · 사회성이 있어 공적 관심사에 해당한다.
이 사건 방송은 개인과 기업으로부터 후원을 받는 합창단의 회계 등 운영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그 보도 내용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공론의 필요성도 인정된다.
이 사건 방송에 원고의 얼굴이 그대로 노출되기는 했지만, 원고가 스스로 얼굴을 공개하며 반론 인터뷰를 한데다가, 이 사건 방송이 포함된 뉴스의 다른 부분에 원고의 사진과 영상이 사용되었고 자막에도 이름이 표시되었으므로, 설사 원고의 얼굴을 식별할 수 없게 하였더라도 시청자들은 그 등장인물이 원고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 사건 방송에 원고의 얼굴이 공개됨으로써 원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추가로 발생하였다고 볼 여지는 크지 않다. 피고들이 이 사건 동영상을 악의적으로 편집하거나 왜곡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까지 더하여 보면 그 표현 내용이나 방법이 사회통념상 상당한 범위를 넘었다고 볼 수 없다.
이 사건 방송을 통한 피고들의 표현의 자유가 초상권 침해로 원고가 입을 피해보다 결코 가볍다고 볼 수 없다.
결국 대법원은 원심이 초상권 침해의 위법성조각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였다고 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5. 판결의 의의
기존의 판례는 초상권 침해의 위법성 판단 기준으로, 침해행위와 피해이익 간에 이익형량에 있어 다소 추상적인 고려요소만을 제시하였습니다{대법원 2006. 10. 13. 선고 2004다16280 판결(이른바 “보험회사” 사건)}. 여기서 이익형량은 개별 사건에서 얼굴을 촬영하거나 공표 등을 한 행위와 피해자의 초상권 사이에 어느 것을 더 보호해야 하는지 형량하는 것입니다. 이익형량을 통해 개별 사건에서 구체적 타당성을 확보할 수는 있지만, 추상적인 고려요소만으로는 과연 어떤 경우에 어느 정도로 초상을 촬영∙공표하는 것이 적법한지 예측하는 데에는 큰 도움을 주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본 대법원 판결에서는 초상권 침해의 경우 이익형량에 나아가기 전에 그에 앞선 위법성판단기준으로 ‘공공의 이해와 관련되어 공중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며 표현내용 · 방법 등이 부당한 것이 아닌 경우에는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즉, ‘공공의 이해와 관련되어 공중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자 공익을 위한 것’이고 그 내용∙방법이 부당하지 않은 경우에는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고 하여, 상위의 판단 기준을 제시한 것입니다. 기존에 초상권 침해가 문제된 사건에서 대법원이 이러한 기준을 언급한 적은 있지만 이를 초상권 침해의 독자적인 위법성 조각사유로 제시하지는 않았고, 초상권을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와 결부하면서 이러한 기준을 사생활 침해의 위법성 조각사유로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2021. 4. 29. 선고 2020다227455 판결 등). 이와 달리, 본 판결은 사생활의 보호와 초상권을 분리하고 초상권에 관한 독자적인 위법성 조각사유로서 위 기준을 제시하였다는 데에 의미가 있습니다.
아울러, 대상판결은 특히 언론보도로 인한 초상권 침해 사건에서 이익형량에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요소를 제시하였습니다. 즉, 대법원은 언론보도로 인한 초상권 침해가 문제되는 경우, 공적 인물인지, 공직자나 정치인 등인지, 공적 활동 분야와 관련된 것이거나 공적 관심사에 해당하는지 등은 이익형량에 중요한 고려요소가 될 수 있다고 하여, 언론보도로 인한 초상권 침해에 특수한 위법성조각 법리를 판시하였습니다. 이러한 법리는 기존에 언론보도로 인한 명예훼손의 위법성 조각사유 중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언급된 것입니다(대법원 2016. 5. 27. 선고 2015다33489 판결). 본 판결을 통해 언론보도로 인한 초상권 침해가 문제되는 경우에도 이러한 기준이 적용된다는 것을 명확히 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본 판결에서는 기존 판례에서 이익형량 중 침해행위의 영역에서 고려되었던 침해의 보충성, 긴급성을 고려요소에서 배제하였다는 점도 특징적입니다. 언론보도는 관련자들의 초상을 같이 내보냄으로써 시사성을 확보할 수 있고, 시청자들에게 그 내용이 진실함을 보여주어 신빙성을 확보할 수 있음이 고려되어야 하므로, 언론보도가 ‘공공의 이해와 관련되어 공중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항인 경우에는 ‘침해행위의 보충성과 긴급성’을 이익형량의 요소로 고려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제기되어 왔습니다{문건영, “언론에 의한 초상권 침해 판단 기준의 구체화에 관한 연구”, 법조(제69권 제5호), 법조협회(2020. 10.) 229, 230면}. 본건 1심 법원은 이 사안의 경우 침해행위의 보충성과 긴급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여 피고들의 행위가 위법하다고 보았습니다. 반면에, 대법원은 침해행위의 보충성과 긴급성을 고려요소에 명시하지 않으면서, 반드시 원고의 초상을 공개했어야 했는지, 이 사건 방송 외에 다른 방법으로 보도내용을 전달할 수는 없었는지에 관하여는 판단하지 않았고 피고들의 행위가 위법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본 판결은 특히 언론보도에 있어 초상권 침해의 위법성 조각사유를 구체적으로 설시하고, 초상권을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와는 독자적인 영역으로 보호하려는 방향성을 제시한 판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법리를 바탕으로 이 사건에서 구체적으로 타당한 결론을 도출하였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 “언론보도로 인한 초상권 침해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사건[대법원 2023. 4. 13. 선고 중요 판결]”
[2] 박수연, “김성회 전 비서관 얼굴 그대로 송출했던 MBC… 대법원, "위법성 배척"”, 법률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