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2025. 1. 23. 선고 2024다277885 판결

작성자 : 김윤기 변호사

1. 사실관계

(1) 甲 회사는 2004. 1. 7. 서울특별시 소재 이 사건 A토지를 취득한 후 2006. 5. 16. K 신탁회사에 신탁하였고, 乙 회사는 2006. 5. 15. 서울특별시 소재 이 사건 B토지를, 2006. 7. 26. 서울특별시 소재 이 사건 C토지를 각각 취득한 후 그 취득일에 곧바로 L 은행에 신탁하였습니다(이하 이 사건 A, B, C토지를 통틀어 ‘이 사건 각 토지’). 이후 이 사건 A토지의 수탁자가 M 신탁회사로 변경되어 M 신탁회사가 2012. 12. 3. 위 신탁토지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습니다.

(2) 서울특별시장은 서울특별시 D구청장의 2004. 9. 16.자 신청에 따라 2006. 5. 11. 이 사건 각 토지 일대 도시계획시설 세부시설 조성계획 변경 결정을 하였는데, 변경신청을 제안하였던 甲 회사는 그 결정 과정에서 서울특별시장의 사업지 서측도로 기부채납 방안 검토 요구에 “결정된 도시계획에 따라 도로 확장에 포함되는 면적을 기부채납하겠다.”라고 회신하였습니다.

(3) 甲 회사와 乙 회사(이하 甲 회사와 乙 회사를 통틀어 ‘甲 회사 등’)는 2009. 8. 20. D구청장에게 도시계획시설사업인 甲 회사 신축공사(이하 ‘이 사건 사업’)의 실시계획 승인신청을 하면서, 이 사건 각 토지 중 원심판결 별지 표시 부분 8,675.25㎡(이하 ‘이 사건 부지’라 한다)를 헌릉로 연결도로 확장에 무상 제공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하였습니다.

(4) 서울특별시장은 2009. 8. 31. 이 사건 부지 등 사업부지 8,945.9㎡를 헌릉로 연결도로 확장에 제공하는 도시관리계획 변경 결정을 하였고, 甲 회사 등은 2009. 10. 30. 서울특별시장에게 “이 사건 사업과 헌릉로 연결도로 공사시행으로 확폭되는 사업지 서측도로의 본 사업지 측 부지 8,945.9㎡에 대하여 사용승인 시 서울특별시장에게 기부채납하겠다.”라는 확약서를 작성하여 주었습니다(이하 위 확약서 기재 약정을 ‘이 사건 기부채납 확약’).

(5) D구청장은 2009년 9월경 甲 회사 등을 이 사건 사업의 시행자로 지정하고, 2009. 11. 5. 준공예정일을 2013. 3. 31.로 정하여 실시계획을 인가하면서 공공기여에 관한 사항으로서 ‘건축물 사용승인 전까지 도로 폭 확장 조성 부분 8,945.9㎡에 관하여 도로 확장 후 기부채납할 것’을 실시계획인가의 부관으로 붙였습니다.

(6) 서울특별시장은 2010년 9월경부터 2013년 6월경까지 이 사건 부지에 도로 개설 공사를 마치고 2013. 6. 13. 특별시도로 지정된 개설 도로(이하 ‘이 사건 도로’)를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7) 甲 회사 등의 채권단은 2010년 8월경 甲 회사 등에 대하여 파산신청을 하였습니다. 甲 회사 등은 2011. 12. 2. 회생계획 인가 결정을 받았다가 2014. 9. 30. 회생계획인가 취소 후 2014. 10. 22. 파산선고를 받았으며, 이 사건 사업은 그 시행을 마치지 못한 채로 2014. 3. 31. 시행 기간이 만료되어 무산되었습니다.

(8) 丙 회사는 2016. 4. 28. 수탁자인 M 신탁회사 및 L 은행과 사이에 이 사건 각 토지와 그 지상 건물에 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다음, 2016. 5. 25. 이 사건 각 토지에 관하여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고 같은 날 N 회사에게 신탁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 주었습니다.

(9) N 회사(주위적 원고) 및 丙 회사(예비적 원고)는 서울특별시장을 상대로, 이 사건 부지에 관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2. 원심의 판단

원심은, 이 사건 각 토지의 종전 소유자들이 이 사건 부지에 대한 독점적∙배타적 사용∙수익권을 포기하였으므로 그 특별승계인인 N 회사는 부당이득반환을 구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24. 7. 24. 선고 2022나2047699 판결).

3.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어느 사유지가 종전부터 자연발생적으로 또는 도로예정지로 편입되어 사실상 일반 공중의 교통에 공용되는 도로로 사용되고 있는 경우, 토지 소유자가 스스로 그 토지를 도로로 제공하거나 그러한 사용 상태를 용인함으로써 인근 주민이나 일반 공중이 이를 무상으로 통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도로의 점유자를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청구나 손해배상청구, 토지 인도청구 등 그 토지에 대한 독점적∙배타적인 사용∙수익권의 행사를 제한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독점적∙배타적 사용∙수익권을 행사하는 것을 제한할 수 있는지 여부는 소유자가 토지를 소유하게 된 경위와 보유기간, 소유자가 토지를 공공의 사용에 제공하거나 그 사용을 용인하게 된 경위와 그 규모, 토지 제공 당시 소유자의 의사, 토지 제공에 따른 소유자의 이익 또는 편익의 유무와 정도, 해당 토지의 위치나 형태, 인근의 다른 토지들과의 관계, 주위 환경, 소유자가 보인 행태의 모순 정도 및 이로 인한 일반 공중의 신뢰 내지 편익 침해 정도, 소유자가 행사하는 권리의 내용이나 행사 방식 및 권리 보호의 필요성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찰하고, 토지 소유자의 소유권 보장과 공공의 이익 사이의 비교형량을 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9. 1. 24. 선고 2016다264556 전원합의체 판결).’는 종전 대법원의 판시를 원용하면서,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 이 사건 각 토지의 종전 소유자들이 이 사건 부지의 독점적∙배타적 사용∙수익권을 포기하였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로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2025. 1. 23. 선고 2024다277885 판결).

(1) 헌릉로 연결도로의 확장은 이 사건 각 토지 일대 도시계획시설 세부시설 조성계획의 변경과 별개로 계획되어 있던 것으로, 甲 회사는 조성계획 변경 과정에서 행정청의 요구가 있자 그에 따라 도로 확장에 필요한 부지의 제공 의사를 표시한 것에 불과하다. D구청장이 실시계획인가의 부관으로 붙인 기부채납 부담도 이 사건 사업의 ‘공공기여에 관한 사항’으로 정하여진 것이었고, 甲 회사 등이 이 사건 사업부지의 일부인 이 사건 부지를 도로 확장에 무상 제공하는 실시계획을 마련하거나 실시계획의 인가 전에 이 사건 기부채납 확약을 한 것 또한 그 경위 등에 비추어 이 사건 사업의 승인을 위해 부득이 이루어진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

(2) 이 사건 기부채납 확약은 이 사건 사업 실시계획 등의 승인을 위한 것으로, 사업시행자인 甲 회사 등이 이 사건 사업의 공공기여 방안으로 기부채납의 요구를 받았다는 사정 이외에 서울특별시장에게 이 사건 부지를 증여할 만한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렵다. 이 사건 기부채납 확약이나 실시계획인가 부관에서 완성된 건축물의 사용승인 시점을 기준으로 기부채납 이행기를 정하였다는 점을 보더라도, 이 사건 부지의 기부채납은 실시계획 등에 따른 사업 완료를 전제로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甲 회사 등은 이 사건 사업이 종국적으로 무산된 경우에도 이 사건 부지를 도로부지로 무상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가졌다기보다, 그러한 경우에는 서울특별시장이 이 사건 도로를 개설하는 과정이나 그 이후라도 사업계획이 취소된 시점에 수용 등을 통해 보상할 것을 기대하였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따라서 이 사건 기부채납 확약은 이 사건 사업 실행을 조건으로 이루어진 의사표시로 봄이 상당하고, 이 사건 사업의 실시계획인가가 실효되고 그 사업계획이 확정적으로 취소된 이상 이 사건 기부채납 확약만을 들어 이 사건 부지에 관하여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사용∙수익권을 포기하는 의사표시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3) 甲 회사 등은 이 사건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 사건 기부채납 확약 등을 하였던 것인데도 이 사건 사업이 실행되지 아니한 채 무산되어 이 사건 부지를 기부채납으로 제공함으로써 얻고자 했던 이익을 실현하지 못하였다. 반면에 서울특별시장은 정당한 보상을 하지 아니한 채 이 사건 부지를 도로로 사용하는 결과가 되었다. 이러한 경우 헌법 제23조 제3항의 취지에 비추어 배타적 사용∙수익권의 포기 법리는 신중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4) 원심이 들고 있는 다른 사정을 보더라도, (1) 서울특별시장이 이 사건 부지에 대해 도로 개설 공사를 위한 사용승낙을 받았더라도 이는 가까운 장래에 기부채납이 이루어질 것을 전제로 한 잠정적인 것에 불과하고, (2) 이 사건 각 토지의 수탁자들인 K 신탁회사, M 신탁회사 및 L 은행이 이 사건 사업의 추진 과정에서 甲 회사 등의 이 사건 기부채납 확약이나 토지 사용승낙 등에 대해 묵시적으로 동의 내지 승인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甲 회사 등과 별개의 독자적인 지위에서 독점적∙배타적인 사용∙수익권의 포기의사를 표시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3) 甲 회사 등에 대한 파산신청 이후 파산선고에 이르기까지 약 4년의 기간 동안 관리인이나 이해관계인들이 이 사건 기부채납 확약을 문제 삼거나 피고에 대해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하는 등으로 토지가 도로로 사용되는 것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이의하지는 않았다고 하여 그러한 사정만으로 이 사건 사업이 무산된 이후 서울특별시장의 무상 점유나 사용에 대해서까지 사전 동의를 하였다거나 사후에 용인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고, 당시에는 甲 회사 등이 도시계획시설사업 실시계획에 대한 변경인가를 받아 이 사건 사업을 계속 추진할 가능성도 있었으므로, 그러한 가능성을 배제하고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웠다는 사정도 고려하여야 하며, (4) 甲 회사 등의 담당자나 관리인이 2012년 8월경 교통개선분담금의 지급의무를 인정하였던 것도 당시 회생계획이 인가된 상태에서 사업이 계속 진행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5) 서울특별시장은 이 사건 사업이 무산된 후에도 상당한 기간 이 사건 부지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수용 또는 사용하거나 별도의 점유∙사용 권한을 부여받지 아니한 채 이 사건 도로부지로 이용해 왔다. N 회사는 이 사건 각 토지에 관하여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시점 이후 토지 임료 상당의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하고 있을 뿐, 토지 인도청구 등 일반 공중의 도로 통행에 관한 신뢰나 편익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만한 청구는 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원심이 들고 있는 헌릉로 연결도로의 공익적 필요성 등을 참작하여 보더라도 이 사건 부지에 대한 토지 임료 상당 부당이득을 반환하는 것이 공익에 부정적이고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없다.

4. 판결의 의의

우리 대법원은 1991년경 판례를 통해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사용수익권의 포기’에 관한 법리를 설시한 이후, 계속하여 이를 원용해 왔습니다. 그리고, 대법원 2019. 1. 24. 선고 2016다264556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하여, 다시 한 번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사용수익권의 포기’의 법리는 재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토지소유권에서 ‘독점적∙배타적 사용수익권’을 별도로 분리하여 이를 포기할 수 있다는 법리는 지속적으로 반대에 부딪혀 왔고, 학계에서도 많은 비판이 있어 왔습니다. 소유권의 본질, 공시의 원칙 및 물권법정주의의 원칙에 반한다거나, 그에 관한 아무런 법원(法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주된 이유였습니다.

이에 대법원은, ‘독점적∙배타적 사용수익권 포기’의 법리에 일정한 한계가 있어야 함을 강조해 왔고, 2013년경부터는 ‘독점적∙배타적 사용수익권 포기’는 극히 예외적으로만 인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해 왔습니다.

위에서 살펴본 최근 판례 역시, 위와 같은 경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대법원이 이 사건 기부채납 확약은 실시계획 등 승인을 위해 ‘부득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실시계획인가가 실효되고 그 사업계획이 확정적으로 취소된 이상 이 사건 기부채납 확약만을 들어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사용⋅수익권의 포기의사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한 점, 이 사건 기부채납 확약은 이 사건 사업 실행을 조건으로 이루어진 의사표시로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한 점, 종전 소유자는 이 사건 사업이 무산되어 이 사건 부지를 기부채납으로 제공함으로써 얻고자 했던 이익을 실현하지 못한 반면 피고는 정당한 보상을 하지 아니한 채 도로로 사용하는 결과가 되었음을 고려한 점 등은, 이 사건의 특수한 사정이 충분하고도 적절히 반영된 것으로 보이며, 향후 유사 사례에서의 판결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됩니다.